리비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유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중동지역 민주화 바람에서 비롯된 이번 고유가 사태는 정정 불안에서 수급 불안, 가격 폭등으로 이어진 과거 석유 위기와 유사한 점이 많다. 에너지의 97%를 수입하고 주력산업이 에너지 다소비 산업인 우리로서는 어떤 고유가 파고라도 견뎌낼 수 있는 든든한 방파제를 준비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유가가 연일 100달러 이상 상회하자 국가 에너지 위기 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하며 고유가 비상시국을 선포했다. 주의 단계는 불요불급한 에너지 사용을 우선 제한하고 민간 부문의 동참을 유도하는 단계로, 비상대책에는 야간 경관조명 소등, 공공부문 자동차 5부제, 에너지 다소비 사업장의 냉난방설비 효율 점검 등이 포함돼 있다.
민간부문 절약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에너지 사용 제한조치 실태 점검이 8일 있었다. 이날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점검반을 구성해 수도권 15개 지역의 금융회사와 대기업, 백화점, 골프장, 아파트, 유흥업소 등의 야간조명 소등 상태를 점검한 결과, 모든 부문에서 대체로 잘 지킨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점검이 유가 급등에 따른 특별조치의 일환으로 홍보기간이 짧았고 시범 실시였던 것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일이다. 이는 반복되는 고유가 파고 속에서 정부가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이후 에너지 절약 같은 녹색가치에 대한 국민의 의식 수준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조명 소등 점검을 시작으로 정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은 연간 에너지 절감 및 동·하절기 전기 절감 우수가구에 대한 포상, 에너지 절약 아이디어 공모전 등 국민 누구나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고 절약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 중이다.
고유가 비상대책과 상시 운영 중인 각종 에너지 절약 프로그램은 국민의 동참 없이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내기 어렵다. 냉난방설비를 고효율 제품으로 바꾸고, 에너지효율 1등급 아파트를 주거공간으로 택하고,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쓰지 않는 조명을 끌 때 녹색 선진국은 희망이 아니라 현실이 될 것이다. 모든 직장과 가정이 녹색을 선택하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정부의 몫이라면, 이를 실천하는 주체는 국민이다.
소처럼 느린 걸음일지라도 뚝심 있게 걷다 보면 천리를 간다. 정부와 기업, 국민이 한마음으로 녹색 비전을 가지고 녹색 선택을 하다 보면 우리는 어느덧 유가 파동과 기후변화협약 의무에도 끄덕하지 않는 탄탄한 경제선진국으로 거듭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문제에 취약한 우리의 경제구조에서 고유가는 분명 위기지만 에너지 절감 요인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데 우리의 지혜와 기술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점검에서 보여준 선진 시민의식을 희망의 싹으로 삼아 녹색 선진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박차를 가할 때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