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터 지진계를 보여주세요.” 지진학자의 연구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지진계는 있어도 리히터지진계는 없다. 지진강도를 나타내는 ‘리히터(Richter)’는 기계가 아니라 개념이다. 미국 지진학자 찰스 프랜시스 리히터(1900∼1985) 등이 고안했는데 산도를 측정하는 단위인 pH처럼 로그값으로 상승한다. 기상청에 따르면 리히터가 1 증가할 때마다 에너지는 30배 증가한다. 즉, 6.0의 지진은 5.0보다 30배, 4.0보다는 900배 강력하다.
▷인간은 지구 내부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다. 아일랜드 지질학자 R D 올덤이 지진기록을 살펴보다가 충격파가 지구 내부의 어떤 장벽을 만나 튕겨 나오는 현상을 발견한 것도 겨우 100여 년 전인 1906년이었다. 1935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 재직 중이던 리히터와 유대계 독일 출신 지진학자 베노 구텐베르크는 지진파를 측정해 에너지를 추정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리히터는 이를 ‘크기 척도’라 불렀는데 후대 사람들은 이를 리히터로 부르기 시작했다. 구텐베르크가 많이 억울할 수도 있겠다.
▷리히터라는 척도가 있긴 해도 진도(震度)의 상한선은 없다. 리히터 개념이 고안된 이후의 가장 큰 지진은 1960년 칠레 발디비아 대지진이다. 처음엔 8.6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미국지질조사국(USGS) 등이 9.5로 수정했다. 이 지진으로 1655명이 숨지고 2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가 1만 km 떨어진 하와이를 덮쳐 61명이 사망했다. 두 번째는 1964년 미국 알래스카 지진(9.2), 세 번째는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9.1)이다.
▷일본 기상청이 11일 발생한 동북부 대지진 규모를 9.0으로 상향조정했다. 지진 발생 당일 8.4로 발표했다가 얼마 후 8.8로 수정했는데 자료를 정밀 분석해 9.0으로 다시 수정했다. 8.8에서 9.0으로만 바뀌어도 에너지는 2배가량 커지는 만큼 이번 지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로써 이 지진은 20세기 이후 네 번째 대지진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지진규모와 피해정도는 일치하지 않는다. 천재지변은 하늘의 일이지만 대비와 극복은 인간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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