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영균]대지진과 엔화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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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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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일본을 두고 ‘여러 경제문제의 특별한 조합’으로 고통 받은 나라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 주식과 부동산투기 열풍에 휩싸였던 일본이 1989년 이자율을 올리자 거품이 급격하게 꺼졌다. 그 뒤 불황에서 벗어나려고 부양책을 썼지만 실패를 거듭해 ‘잃어버린 10년’이 시작됐다. 일본은 작년부터 긴 불황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듯한 조짐을 보였으나 이번에 대지진이라는 비경제적 위기 요인이 추가됐다.

▷대지진 참사로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인 일본이 경제위기를 맞고 있다. 원자력 발전소 폭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계획정전이 실시되고 정유 제철 등 주요 기간산업이 잇따라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교통과 통신이 차질을 빚고 유통업체의 영업시간까지 제한을 받게 되면 일본 경제는 더 위축될 것이다.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위기란 허리케인과 같다”고 했다. 위기도 허리케인처럼 예측 가능한 위험이라는 뜻이지만 미증유의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 경제의 향방은 당분간 예측 불허의 상황이다.

▷1995년 한신 대지진 때 일본 엔화는 강세였다. 해외에 투자했던 일본 큰손들이 복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하면서 당시 엔화는 두 달가량 강세를 보이다 약세로 돌아섰다. 대지진이 발생한 11일 이후에도 일본 해외법인과 투자펀드들이 달러를 엔화로 바꾸면서 엔화가 달러당 80.58엔까지 가는 등 강세를 보였다. 일본 국민들의 애국심이 엔화 강세를 만든 셈이라고 할까. 그러나 일본 정부가 18조 엔(약 247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엔화는 다시 약세로 기울었다. 한신 대지진 때보다 엔화 강세 요인이 약하다는 뜻이다.

▷한국 경제는 엔화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일본과의 경쟁 품목이 많아 엔고일 때는 수출이 호조를 보이지만 엔화 약세 때는 정반대다. 일본 부품과 소재를 들여다 쓰는 기업에서는 엔화 강세가 원가 상승 요인이라 불리하지만 엔화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엔화 강세보다 약세를 반길 것이다. 어느 쪽이든 엔화 환율이 들쭉날쭉 춤추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본이 대지진의 충격을 딛고 일어서야 엔화가 안정세를 되찾을 것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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