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5일자 A20면 ‘휴지통’을 통해 오랜만에 가슴 뭉클한 한 편의 드라마를 읽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우(役牛) 황순이의 파란만장한 일생이다. 전남 강진군 군동면 명암마을의 농부 신옥진 이애심 씨 부부가 기르던 서른한 살배기 한우가 그 주인공이다. 24년간 동고동락하면서 새끼 16마리를 낳아 4남매의 교육비를 보탰고 주인과 함께 농사일을 했다. 사람으로 치면 80세 이상의 천수를 누리고 자연사한 황순이를 노부부는 집 근처 따뜻한 양지 밭에 묻어 주었다. 동민들과 같이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지냈으며 강진군은 황순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무덤 앞에 비석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소의 죽음에 이처럼 유별난 감정을 표하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우리나라에는 구제역이 만연해 축산 사상 미증유의 고통을 겪은 바 있다. 300만 마리 이상의 소와 돼지가 도살 처분당하는 가슴 아픈 일을 참아야 했다. 몇 년씩 정성으로 기른 어미 소와 함께 송아지까지 생매장해야 했던 농민들의 참담한 충격을 어떻게 풀어 줄 수 있을까.
지구촌 한쪽에서는 식량 부족으로 수천만 명의 아이가 굶어 죽어가고 있다. 어떤 곳에서는 육류 과잉 섭취로 성인병이 창궐하고 있다. 인간에게 먹는 것은 생존을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인간답게 먹어야 하고 어떠한 금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도 배려와 질서를 실천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생명의 숙연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에게 애절한 사연을 주고 간 황순이. 동물이지만 이 세상의 뭇 생명체는 다 같이 존귀하다는 진리를 일깨워주고 떠났다. 평생 멍에를 벗지 못하고, 밭을 갈고, 짐을 끌고, 새끼를 낳았던 우리의 한우 황순이, 그의 무덤에 많은 사람의 발길이 모일 것이다. 아울러 구제역으로 혹독한 추위 속에서 촉촉한 눈망울로 싸늘한 흙 속으로 떠난 수많은 한우도 왕생(往生)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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