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9일 리비아 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군사적 행동을 승인했다. 2월 중순부터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정부군이 민주화 요구 시위대에 발포하기 시작했으니 한 달 이상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상군의 투입은 없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고 ‘제한적 군사행동’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군사력을 동원하는 이유 역시 리비아 국민들에 대한 유혈사태를 막으려는 인도적 목적이며 국제사회의 총의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미군의 힘을 바탕으로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을 추진했던 조지 W 부시 전임 대통령과는 분명히 대비되는 부분. 2009년 7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했던 ‘무슬림과의 화해’ 선언 이후 추구했던 중동정책의 기조를 흔들지 않겠다는 고민의 흔적도 보인다.
취임 2년을 넘기면서 크고 작은 외교안보 현안에 직면하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특히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점화된 중동과 아프리카의 민주화 바람은 상원의원 2년 경험이 고작인 초보 대통령을 잠 못 들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 의사결정 과정을 보통 ‘햄릿형’이라고 설명한다. 큰 귀를 가진 탓인지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현안이 발생할 경우 수많은 회의를 주재하고 난상토론을 벌이지만 정작 결정은 매우 신중하고 느리다는 뜻. 한 외교소식통은 “결론을 정해두지 않고 난상토론을 벌이길 좋아하며 극단의 논리조차 무시하지 않고 대화 테이블에 올리는 것까지는 좋지만 결단력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전격 퇴진 결정으로 일단락된 이집트 민주화 시위에 대한 대응은 오바마 대통령의 의사결정 구조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 전형적인 사례였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집트 사태는 안정적”이라고 했다가 “무바라크는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연출했다.
느릿느릿한 그의 의사결정 과정은 북한 문제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정권을 잡을 당시 한반도 정책이 성안되지 않은 상태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 등 벼랑 끝 전술에 직면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의 기조가 이른바 ‘전략적 인내’.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증명하고 한국에 대한 도발행위에 책임지는 ‘체제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기 전에는 관계 개선에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민주당 진영을 대표하는 최고 원로 외교안보 전략가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시절인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오바마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 “오바마는 분명 세계인에게 새로운 미국의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 밝힌 목표가 과연 실행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구심을 주고 있다. 이제는 그 비전을 효과적으로 실행하는 데서 진정한 결단력을 보여줘야 한다.”
2008년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오바마 후보를 겨냥해 “새벽 3시 비상상황에 백악관에 울린 전화를 누가 받을 것인가”라는 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국정경험이 부족하고 외교안보 현안에 큰 전문성을 갖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주인이 될 경우 신속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인지를 꼬집는 내용이다. 최근 빈발하는 백악관의 ‘새벽 3시 상황’. 여전히 강한 미국을 향수하는 보수적 색채를 가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지나치게 숙고하는 젊은 대통령이 불안하다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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