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요즘 어느 때보다 하나로 뭉친 일본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들의 이타심, 극기심, 절제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근로자들에게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시민들을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 위험한 방사성 물질 누출과 싸우고
있다.
일본에서 유명한 동상 중에 하치코라는 개(犬)의 상이 있다. 매일 기차역에서 일터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렸으나 1925년 어느 날 주인이 직장에서 죽는 바람에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지만 하치코는 10년 동안 매일
오후 기차역에서 주인을 기다렸다. 일본이 충절과 의무감을 상징하는 또 다른 동상을 세운다면 이번 원전 사고에 투입된 근무자들의
동상을 세웠으면 하는 생각이다.
나는 뉴욕타임스 도쿄지부장으로 일하면서 5년간 일본에서 살았다. 때로 일본
정부의 이중성이나 무능력에 비판적이었지만 이번 지진 사태로 일본인들의 시민의식이나 남을 생각하는 배려심에 더 주목하게 됐다.
일본에는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예법)가 있다. 아무리 싸구려 식당에 가도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 날엔 우산을 빌려준다. 손님이
하루나 이틀 뒤에는 꼭 되돌려 줄 것이라고 그들은 믿는다. 지하철에서 지갑을 잃더라도 일본에서는 곧 되찾을 수 있다.
이번 지진은 일본의 두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불운한 일본 정부와 불가능한 역경을 명예롭게 품위를 지키며 견뎌내고 있는
시민들이다. 나는 6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던 1995년 한신 대지진 당시 문 닫힌 상점들에서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한 가게 주인이 “세 명의 젊은이가 먹을거리를 훔쳐 들고 가게를 나서는 것을 보았다”고
하기에 “일본인들이 그렇게 비열하게 변해버린 것이 놀랍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주인은 “당신이 오해한 거다. 물건을 훔친
사람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외국인이었다”고 했다.
일본에도 어두운 면이 있다. 그들이 재난에 불평하지 않고 감내하는
모습은 왜 일본이 삼류 지도자에 만족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 촘촘하게 짜여 있는 이른바 매뉴얼이 지배하는 사회는 그
체제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쉽게 가려낸다. 초등학교에서부터 기업에 이르기까지, 약자를 따돌리는 ‘이지메’가 바로 그것이다.
봉건시절 하층민의 후손인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불리는 천민계층과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사회에서 낙인찍힌 채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일본이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다든지 최고경영자(CEO)들이 미국처럼 엄청난 연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은 배울 만하다. 또 부라쿠민이나 재일 한국인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 학교들조차 시설이 훌륭하다.
아내와 나는 일본에 살 때 일본학교에 보낸 내 아이들에게서 철저히 주입된 일본식 공동체적 의식을 발견했다. 교사가 아플 땐,
대리교사가 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역할을 분담한다. 어느 날 아들의 생일 축하를 위해 반 친구들을 초대해 음악이 멈추면
의자에 먼저 앉는 놀이를 했다. 그런데 맙소사! 아이들은, 특히 여자아이들은 자기가 이기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쳐내고 의자에
앉는 것을 싫어했다. 그날 우리 집에서 했던 게임은 세계 역사상 가장 경쟁적이지 않고, 예의바르고, 남에게 미안해하는(!)
게임이었다. 나는 그날 남을 이겨야 하는 게임에서조차 이길까 봐 미안해하는 일본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인 우리는 때로 삶(특히
연봉 협상 같은 데서)을 음악이 멈추면 가장 약한 자를 즐겁게 밀어내는 ‘게임’처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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