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국제심포지엄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무렵 국회에서 한창 사법개혁 논의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후 신문과 인터넷 등을 통해 어떻게 논의가 진행되는지 유심히 지켜보던 중 얼마 전 국회 사법개혁특위 소위가 발표한 내용을 보는 순간 놀랍고 의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필자가 의아하게 생각한 대목은 판검사 비리를 전담해 수사하는 특별수사청을 설치한다는 부분이다. 도대체 한국에는 판검사의 범죄가 얼마나 빈번히 일어나기에 특별수사기구가 필요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 판검사들에게 한국에 이런 기구가 생기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특별수사청 설치 법안이 통과되면 한국은 범죄를 척결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판검사들의 범죄나 비리가 빈번해 특별수사기구가 필요할 정도인 나라로 전 세계에 잘못 알려지게 될까 걱정된다. 한국에서 판검사 비리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독자적인 검찰청 또는 수사기관을 별도로 만들어야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만약 이러한 특별수사청의 설치가 기존 판검사 비리에 법원과 검찰이 엄격하게 대응하지 못한 결과라면 그 근본원인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 과제이지 별도 기구를 만드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오래 몸담았던 맨해튼 검찰청만 하더라도 ‘공무원 비리수사부’가 따로 있어 판검사뿐 아니라 모든 공무원의 비리를 수사한다. 검찰청 소속이고 검사들이 실무를 담당하지만 사건의 특수성 때문에 사무실을 별도로 검찰청사 밖에 두었다.
연방정부의 경우에도 과거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법무부 내에 ‘정부범죄청’을 설치하는 법안이 제출돼 논의됐으나 결국은 특별기구를 만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아 1978년 특별검사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특별검사제도 역시 과잉수사 및 삼권분립 위반 등의 논란이 빚어져 결국 폐지되고 지금은 ‘특임검사’ 제도가 도입돼 개별 사건 발생 시 법무부 장관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독자적인 수사를 하도록 하되 법무부 장관이 국회에 보고해 민주적인 통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법무부 소속 ‘공직부패수사부’라는 부서가 법무부 형사과 내에 존재하며 그 부서에서 항상 모든 연방 공직자의 부패 비리를 수사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다. 이 부서의 검사들은 연방수사국(FBI)과 함께 이런 부패 비리 수사를 하고 있다.
필자는 한국의 기존 검찰 조직만으로도 판검사 비리를 척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때에는 미국에서 시행하는 것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몇 년 전에도 한국에서 사법 개혁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던 것을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사법개혁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통과됐던 사법개혁 법안들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단편적인 성과에 그치고 또 다른 문제들을 낳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는 한국의 사법개혁이 단순히 ‘개혁만을 위한 개혁’, ‘권한 축소만을 위한 개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쪼록 이번에 추진되는 사법개혁이 국민의 뜻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개혁이 되고 책임감 있는 선진국 사법제도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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