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의 후보지인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에 대한 입지평가 결과 두 곳 모두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어제 입지 평가위원회의 평가 결과를 수용해 신공항 건설계획을 백지화하겠다고 밝혔다. 수십조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기 위해 전력 투구해온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권은 악화된 지역 민심에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동남권 신공항은 2006년 1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토를 지시하면서 국가적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07년 8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공약했다. 이 대통령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 두 곳의 권역별 공약집에 “동남권에 새 공항을 만들어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의 인구 및 물류 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만들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선거 공약에 고무돼 ‘제2의 인천공항’이 들어서기를 잔뜩 기대했던 지역주민의 배신감은 클 것이다. 타당성이 미흡한 사업을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물러선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이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을 비롯한 선거용 국책 사업의 이행 여부를 최대한 빨리 정리했어야 했다. 결정이 늦어지면서 국회의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이 지역 민심을 부추겼다. 해당 지자체들이 서울까지 올라와 과열 홍보전을 벌이고 유치를 원하는 지역 사이에 갈등 양상마저 빚어졌다. 정부는 지킬 수 없는 공약을 질질 끌고 감으로써 사태를 악화시키고 말았다. 이 대통령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공약(空約)이 돼 버린 데 따른 후폭풍 수습에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영남지역 주민은 대승적 차원에서 이번 결정을 수용하길 바란다. 해당 지자체들은 신공항을 독자적으로 건설하거나 현재 계획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규모 사업의 자체 추진에는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발전과 재정 효율이 조화를 이루는 최선의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정치적 목적을 앞세운 국책 사업은 갈등만 초래하고 실패하기 쉽다. 원안과 수정안 사이를 오락가락한 세종시 건설사업이 대표적 사례다. 이 대통령이 충청권 유치를 공약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도 세종시 수정안의 무산으로 입지 선정이 재검토되면서 갈등을 빚고 있다. 대형 국책사업이 국가이익보다 지역적, 정치적 이해에 따라 결정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번 기회에 끊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