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규태]원자력 전문가 자리를 순환 인사 시키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31일 03시 00분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호기 폭발사고 소식이 전해진 12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7층에 있는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3, 4명의 직원은 상황을 파악하고 보고를 하느라 바삐 뛰어다녔지만 다른 직원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컴퓨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비상상황이라 토요일에 출근은 했는데 전문지식이 없으니 그냥 자리만 지킨 것이다.

며칠 뒤 교과부의 다른 직원에게 기자가 본 상황을 얘기했다. 그는 “원자력안전국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지만 순환 보직으로 비전문가들이 있다 보니 원자력을 잘 아는 직원들에게 업무가 몰릴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만일 일본 사태가 심각해지고 한국에도 문제가 생기면 정말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지 우려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방사성 물질이 한국으로 유입되자 원자력안전국은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의존한 채 뒤로 빠졌다. 이 과정에서 교과부와 KINS의 손발이 안 맞아 서울의 방사성 물질 검출 문제를 놓고 공식 입장을 2시간 만에 번복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은 구조적인 문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 정부 들어 성격이 상이한 교육인적자원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치고 업무 통합을 위해 순환 인사를 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원자력 업무를 교육전문가들이 맡는 일이 생긴 것이다. 현 정부 들어 원자력 부서의 30% 정도는 교육 쪽 인물로 채워졌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반대로 원자력 담당자들은 외부 의견을 수용할 공간을 배제한 채 ‘그들만의 리그’로 진행해 교육부 출신들을 미리 훈련시키지 못한 책임도 있다.

이런 사태는 오래전부터 예고됐다. 원자력은 특수 분야라 ‘원자력 특채’라는 제도를 통해 전문가들을 공무원으로 뽑았다. 하지만 2004년 2명을 뽑은 이후 현재까지 이 제도를 통해 들어온 사람은 없다.

교과부는 25일 밤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을 내 원자력안전국장과 소속 과장을 바꿔 일부나마 전문성을 강화했다. 하지만 이런 ‘임시변통’으로는 원전정책이 제대로 세워질 리가 없다.

7월이면 상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생기고 원자력안전국도 이 위원회로 이동하게 된다. 원자력계의 한 원로는 “위원회가 허수아비가 되지 않으려면 인력 수급과 배치 제도에 혁신이 있어야 한다”며 “원자력전문가뿐 아니라 정책전문가를 비롯해 화학 기계공학 등 다양한 전문가 집단이 포함돼 사고가 열린 집단 지성의 역량이 발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규태 동아사이언스 kyouta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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