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학점 인플레, 학점 스트레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일 03시 00분


‘대학 알리미’를 통해 공개된 전국 190개 4년제 대학의 성적을 교육과학기술부가 분석한 결과 B학점 이상이 90%를 넘을 정도로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했다. 지난해 대학 졸업생의 졸업 평점을 보면 A학점이 35.4%, B학점이 54.9%나 됐다. 낮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재수강을 통해 성적을 높인 결과인 것 같다. 일종의 학점 세탁이다.

학점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취업난으로 인해 학생들끼리 학점 경쟁이 심해지고, 강의평가제가 도입되면서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후한 점수를 남발한 탓도 있다. 학점이 높아졌다고 해서 학생의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학점 인플레이션의 폐해는 부메랑이 되어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어느 취업 포털의 조사 결과 기업 인사담당자의 30%는 학점을 가장 변별력 없는 ‘취업 스펙’으로 꼽았다.

반면 KAIST처럼 학점을 짜게 주고 등록금과 연계해 엄하게 운용하는 대학도 있다. 수재들이 모인다는 KAIST에서 올해에만 로봇 영재를 포함해 3명의 학생이 자살했다. 학점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키웠을 것이다. 학점 3.0에서 0.1점씩 낮아질 때마다 약 60만 원씩 등록금을 내야 하니 징벌적 등록금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KAIST의 학점-등록금 연계제도는 면학 풍토를 조성해 글로벌 인재를 만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학생들끼리 강의 노트도 서로 안 빌려줄 정도로 삭막한 교내 분위기를 만들고 일부 학생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듯하다.

하버드대 등 미국 명문대에서도 학점 인플레이션 현상이 있다. 교수의 재량권이 많은 절대평가제를 시행하는 대학일수록 심하다. 외국 명문대들은 학점 인플레이션이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릴 지경에 이르자 적극적으로 개선책을 내놓고 있다. 프린스턴대는 전체 학생의 35%에게만 A학점을 주도록 하는 상대평가제를 2004년에 도입했다. 많은 대학은 후한 점수를 주는 교수에게 주의 조치를 내리고 있다.

교과부는 고교 내신을 절대평가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등학교는 내신 부풀리기를 하고 대학은 학점 부풀리기를 하는 풍조가 만연하면 평가가 신뢰를 잃어 교육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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