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특별 기자회견에서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결정에 대해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쉽게 꺼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대구 경북 경남과 부산의 민심이 심상치 않다. 다른 대선 공약인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입지 선정 시한도 올 상반기로 다가오고 있어 공약 파기의 후유증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선이 끝나면 선거운동 기간에 표심을 겨냥해 무리하게 제시한 공약은 빨리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관점도 있지만 국민을 현혹하고 결과적으로 국익(國益)을 해칠 공약은 처음부터 내놓지 말아야 옳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각종 선거 때 공약한 것을 다 하면 국가재정이 따라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무리한 공약을 무리하게 강행하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폐해가 커진다는 말은 맞다. 그러나 원초적 문제는 각 정당과 후보들이 치밀한 검증 없는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데 있다. ‘국민이 원하니까’라는 말은 무책임한 핑계다. 공약(空約)에 그칠 공약(公約)을 남발하는 것은 국민의 판단과 선택을 왜곡해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이 대통령은 “해당 지역(영남권) 발전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의지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공약으로 내건 신공항 건설까지 백지화했는데, 임기 2년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이 다른 약속을 한다고 지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내년에 국회의원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실시된다. 표를 노린 무수한 공약이 경쟁적으로 쏟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동남권 신공항처럼 지역갈등으로 국력을 소모시키다 백지화하는 사례를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 이 나라 이 국민이 언제까지 이런 ‘거짓 정치의 비용’을 물어야 하는가.
이제부터라도 사회 각계각층 지식인을 포함한 국민이 나서서 각종 선거 때 허황되고 타당성이 낮은 공약을 내거는 정당과 후보들을 배격하는 국민운동을 벌여야겠다. 공약 파기의 악순환이 되풀이될 때마다 정치권 탓만 하고 수수방관할 수는 없다. 예산 배정의 적절성 논란에 휩싸인 전면 무상급식을 비롯한 무상복지 과잉복지 공약시리즈에 대해서도 실현 가능성과 적절성을 엄격히 따져 거품공약을 표로 응징해야 한다. 국민이 지난날 무수히 겪은 ‘선거 허언(虛言)’을 까마득하게 잊고 또다시 ‘공약 허풍’에 휘둘린다면 정치발전도, 국력강화도, 민생개선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