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한우신]의사시험 부정행위, 국가시험원 책임은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한우신 교육복지부 기자
한우신 교육복지부 기자
강모 씨는 2011년 2월 의대를 졸업하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했다.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 의술을 베풀겠노라.’

선서 6개월 전 그는 의사 국가시험 실기시험장에서 ‘문제 외부 유출 시 민형사상 책임을 진다’고 서약했다. 그보다 수개월 전 그는 의대 졸업준비생 3300여 명 중 2700여 명과 함께 약속했다. 실기시험 문제 정보를 공유하되 이 사실은 외부에 알리지 말자고.

‘전국의대 4학년협의회(전사협)’ 집행부 10명이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의사 실기시험 문제를 조직적으로 유출한 혐의로 입건되면서 파문이 만만치 않다.

시험을 주관하는 한국보건의료인 국가시험원(국시원)은 이들이 기소유예 처분만 받아도 의사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사이트에 시험 관련 글을 올린 654명에 대한 처리를 놓고도 고심하고 있다.

집행부 대표였던 강 씨는 “공유한 정보란 게 어떤 모의환자는 말을 잘 안 하니까 주의해라, 어느 시험실 장갑은 퍽퍽하니까 시간 안배가 중요하다는 등의 수준이었다”면서도 “6년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봐 두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2009년 처음 실기시험이 도입된 뒤 국시원에 세세한 정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분명 잘못했고 결과에 대한 책임도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부정행위를 사실상 방치한 국시원 역시 책임이 무겁다. 학생들을 나눠 실기시험을 두 달 동안 치르는 과정에서 문제가 유출될지 모른다는 지적은 전부터 나왔다. 실제로 2009년 첫 실기시험 뒤에는 어느 졸업생이 문제를 묶어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국시원은 문제 유출 우려에 대해 1월 “학생들이 서약서를 작성했고, 문제 공유가 점수와 합격률에 별 영향이 없다”며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부 관계자는 시험장에서 “상업적 이용이 아니라면 학생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걸 무슨 수로 막겠느냐”고 말해 학생들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국시원은 문제 공유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한다. 그들로서는 손쓸 도리도 없고, 손대고 싶지도 않은 일을 경찰이 건드리는 바람에 피곤해졌다고 내심 생각할지 모르겠다.

취재에 응한 강 씨는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는 따뜻한 내과 의사’가 꿈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꿈을 잃을 수도 있는 처지가 됐다. 그의 책임이 가볍지 않지만 그에게만 돌을 던지기도 어려운 문제가 아닐까.

한우신 교육복지부 hanwsh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