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안재경]재난 통신두절, 지상-위성 겸용망으로 대비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2일 03시 00분


안재경 서울과기대 산업정보 시스템공학과 교수
안재경 서울과기대 산업정보 시스템공학과 교수
요즘 뉴스에서 눈을 뗄 수 없다. 3월 11일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처럼 보이는 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이 일본을 강타했다. 속절없이 무너지는 집과 건물들, 뒤엉켜 떠내려가는 자동차와 선박들. 익숙해서 옛날부터 그래 왔을 것으로 여겨지던 우리의 모든 것이 거대한 자연의 위력에 너무도 쉽게 사라진다. 일전에 경험했던 아름답고 깨끗한 센다이(仙臺) 항, 친절한 그곳 사람들의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잡고 있던 딸의 작은 손을 놓친 엄마와 어딘가에 살아 있을지 모르는 부모를 찾는 자식의 처절한 모습들이 한없이 애처롭고 슬프다.

그토록 재난 대비를 잘해왔다는 일본에서도, 재앙이 닥치자마자 도호쿠(東北) 지역은 물론이고 멀리 떨어진 도쿄(東京)에서도 휴대전화나 유선전화가 불통이 돼 버렸다. 정부와 언론의 피해 상황 파악은 고사하고, 국민이 가족의 안부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길이 끊겨 갈 수도 없고, 통신이 두절돼 연락할 수도 없는 긴급 상황에서 외부와 이렇듯 단절되었을 때 느끼는 고립감과 무력감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하지만 이번 일본 지진에서도, 지난번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연평도 도발에서도, 신문 지면에 보도되는 ‘암흑천지, 통신두절’은 우리에게 더는 생소하지 않다. 재난으로 기지국이 파괴되거나 아예 없는 지역에서 휴대전화는 나의 위급 상황을 알려 생명을 구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일까.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전화기 너머로 가깝게 있던 가족과 친지들이 일시에 증발해 버린 것 같은 답답한 상황은 어찌할 수 없이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졸지에 무기력해진 이재민들을 위한 사회적 정의는 어떻게 구현되어야 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통신기술을 조금만 연구해서 활용하면 불가피한 사고나 재난으로 지상기지국이 작동하지 않을 때도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인터넷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 정부와 통신사업자가 나서 차세대 위성을 만들고, 일반 사용자는 쓰고 있는 휴대전화와 모양과 가격이 거의 동일한 지상 위성 겸용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된다.

문제는 수천억 원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위성을 쏘아 올려 공공서비스 위주로 시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일본도 2015년을 목표로 이러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우리 실정은 어떤가. 혹여 긴급 상황이나 재난이 매우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라서 통화량이 많지 않을 것이고, 더욱이 국민 중에 치명적인 재난에 노출되는 비율이 극히 미미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안위와 목숨은 모두 합쳐봐야 그 가치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비상 상황에서는 누구나 ‘통신 두절’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므로 통신사업자들에게 수천억 원을 투자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판알을 튕기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정부에서는 사업자들의 경제적 타당성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비용편익비율이 1을 넘어야 통과되는 예산 타당성 분석에서 탈락할 것을 우려하여 대규모 투자를 감행하는 걸 머뭇거리고 있지는 않은가.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공리주의에 기반한 시장의 도덕적 한계를 언급하면서 사회적 정의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의 방법이 공동체 시민의 미덕을 고양하는 것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눈앞에 갑자기 닥친 재난으로 고통 받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절실한 공공인프라 재건과 공공서비스 창출은 우리 국민의 공동체 미덕을 한껏 높여 정의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공론에 부치고 싶다.

안재경 서울과기대 산업정보 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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