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재난은 까치발로 살금살금 다가온다. 한신 대지진 때도 그랬다. 직후에는 기분 나쁜 침묵이 흐르고, 사람들이 피해 실태를 파악하기까지는 기묘한 틈새가 생긴다. 이번 지진이 1000년에 한 번 올까말까 한 거대 재난임을 실감한 것은 쓰나미가 바닷가의 마을들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영상이 흘러나오고부터다. 우리는 ‘안전한’ 천지개벽쯤에는 익숙하다. 특수촬영한 영상들 덕분이다. 하지만 실제의 대재앙을 찍은 영상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마을을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쓰나미와 쑥대밭이 된 광경을 보고 그저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게 고작이었다.
사망자 수는 날마다 늘어 1000명을 넘어선 것이 며칠 뒤, 1만 명을 넘어선 것이 2주 뒤였다. 여기에 행방불명자가 더해지면서 숫자란 것은 점점 더 추상적인 것이 되어갔다. 사람의 마음은 대량의 죽음을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작다. 그리하여 마음을 닫아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타노 다케시(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감독)의 말처럼 이 재난은 사람 1명이 죽은 2만 개의 사건이기도 하다. 살아남은 자는 죽은 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면서 죽은 자를 대신해 미래를 지켜볼 의무를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
재난 직후의 패닉상태에서 제 몸을 지키기 위한 행동으로, 구출활동에서 구원과 복구활동으로, 어마어마한 재해에 자극받은 흥분상태에서 우울상태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도 의식도 변해만 간다. 하지만 복구의 길은 험난하다. 지진과 쓰나미가 파괴한 것은 마을과 인프라, 주택만이 아니다. 정치, 경제, 문화,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과 세계관까지도 원점으로 되돌려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우선 일상생활을 지탱해온 교통기관, 전기, 가스, 수도 공급이 끊겼다. 라이프 라인이 단절되면서 인간은 갑자기 무인도에서 서바이벌 경쟁 같은 것을 해야 하는 상태에 놓였다. 곧바로 트위터 등을 통한 정보교환이 위력을 발휘해 자발적으로 서로 돕는 네트워크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언비어의 출현과 그 확산도 문제가 됐다. 오래지 않아 피해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기원의 말과 피해자를 걱정하는 게시판 글이 늘어났고, 스트레스가 쌓이는 탓인지 유머를 원하는 분위기까지 생겨났다.
비상상태도 길어지면 익숙해진다. 여진이 계속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원자력발전소 사고와 정전으로 옮겨갔다. 원자력발전소는 폐쇄 뒤에도 방사선을 계속 뿜어낸다는 점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해결이란 단어는 없다. 안전정지라는 말에도 모순이 있다. 플루토(악마, 플루토늄을 그 어원인 플루토에 빗댄 말)를 발전에 사용하고 있는 한 영원히 그 해악을 관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비용은 어림잡아도 원전의 혜택을 훨씬 뛰어넘는 손실이 될 것임이 명백하다. 후쿠시마 원전은 1970년대 오일쇼크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제성장 도상에 있던 일본은 단기, 중기적으로 전력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미래에 막대한 부채를 남길 것을 은폐하면서 원전 건설을 추진했다. 말 그대로 후쿠시마 원전은 40년 뒤에 큰 재앙을 가져올 시한폭탄이었던 것이다.
원자력발전의 옳고 그름을 둘러싼 논란은 더욱 과열될 것이다. 지금 수면 밑에서는 전력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절약형 가전제품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메이커들, 여름철 전력 부족을 하소연하는 전력회사 혹은 원전추진파, 때로는 감정론으로 치닫는 반원전파, 여기에 화력발전 부활을 노리는 석유 메이저까지 뛰어들어 복구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노리고 있다.
그런데 복구를 입에 올릴 때 사람들은 어떤 미래를 맞이하기를 원하는 걸까. 제2차 세계대전 후 폐허에서 이뤄 낸 부흥과 그에 이어진 경제성장이 다시 한 번 반복하기를 원하는 걸까. 분명 ‘국가 존망의 위기’라는 점에서 재난 직후인 현재와 1940년대를 비교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대본영에 의한 정보통제와 현 정부의 정보공개 지체를 대비하거나, 언론보도의 단순화나 자숙 등에 과잉 반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전쟁과 지진은 인재와 천재라는 차이는 물론이고 정보공개 정도나 언론 상황, 유통, 경제, 그 밖의 갖가지 점에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그 둘을 동일시하는 논의는 쓸모없는 것이다. 또 ‘기적’이라는 전후 부흥이 다시오기를 기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100년에 한 번쯤 올 만한 공황이라 일컬어진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는 이전부터 결함이 지적돼온 시장원리주의의 한계를 드러냈다. 1000년에 한 번이라는 이번 재해에서는 단기적 이윤추구에 철저한 자본의 원리가 재해 피해를 더욱 키우는 인재(人災)로 작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복구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준비여야 한다.
물자를 독점하거나 정보를 은폐하고 날조하는 것, 이윤을 추구하는 것, 책임을 방기하고 도망가려 하는 것, 그런 것들은 재해 시에는 심하게 손가락질 당하고 복구의 방해가 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자유경쟁하에서는 타인을 따돌리는 일련의 행동은 오히려 장려돼 왔다. 만약 일본인 대다수가 이 자본주의의 악습에 뼛속까지 물들어 있었다면 이번 재해에는 더 비참한 인재가 동반됐을 것이다. 우리에게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일본인들에게 오래전부터 내려온 좋은 윤리의식과 연대감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누구나가 자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고 의연금을 모금하고 필요한 정보를 공유했으며 전력을 낭비하지 않고 사재기를 자제하고 물과 음식을 나누려 했다. 비상시에 확산되는 이 같은 자발적 윤리의식과 연대감이야말로 복구의 첫걸음이 된다.
소비 억제의 결과로 생산활동은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잖아도 불경기인지라 산업은 더욱 더 침체될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재해는 지금까지 자본의 원리에 방해받아 실현하기 어려웠던 공동체의 구축을 좀 더 쉽게 해줬다고도 할 수 있다.
재해 직전까지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패배나 장기적 경기 침체로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 쓸모없는 내셔널리즘으로 치닫는 경향이 강했다. 보수 정치가나 일부 우익 시민 사이에서도 수상쩍은 전쟁대망론이 속삭여지곤 했다. 민주당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정치적으로는 뭘 해도 실패했다. 재해는 그 실점(失點)을 한꺼번에 없애줬는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정부 대응이 어수룩하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적어도 현재의 일본은 전쟁을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본처럼 자연재해가 많은 나라에서 구조나 복구에 자위대의 활약은 없어선 안 된다. 현재 자위대는 활동 무대의 3분의 2를 구조 복구 임무에 내주고 있다. 전쟁 같은 걸 시작하고, 그 사이에 다시 쓰나미가 몰려온다면 그때는 정말 나라가 망한다.
일본은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세계 각국으로부터, 또 많은 개인으로부터 사람, 물품, 자금을 지원받고 있다. 이 우정에는 깊이 머리 숙여 감사한다. 진심 어린 국제적 우정의 고마움을 지금 우리는 곱씹고 있다. 일본은 자본의 원리에 기초해 많은 것을 빼앗기도 했고, 주기도 했다. 지금부터는 경제대국의 역할과는 다른, 국제적 신용 획득을 지향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재해대책의 노하우를 각국과 공유하는 일, 원전의 위기관리에서 배운 교훈을 널리 전파하는 일, 헌법에 명기되어 있는 전쟁포기를 실천하는 일, ‘사람은 자본의 원리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향후 복구의 방법론으로 제시하는 일…. 옛날식 복구 이미지로부터 탈각해 일본에 새로운 공동체사회를 세우겠다는 정책을 내세우는 것 말고는 일본이 살아남을 길이 없음을 현 정권 담당자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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