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고객정보 흘리는 나라는 금융 후진국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11일 03시 00분


선진국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척도 가운데 하나는 개인의 신용 관련 정보가 얼마나 잘 관리되느냐를 보는 것이다. 소비자 금융이 발달한 서유럽 국가에서 인터넷뱅킹 비밀번호는 우편으로 1차 번호가 고지되고 고객이 이를 입력한 뒤 수정하는 방법으로 발급된다. 은행 직원이 고객의 비밀번호를 원천적으로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현대캐피탈의 전산시스템이 해킹을 당해 42만 명의 고객정보가 유출됐다. 고객 4명 중 1명꼴이다. 유출된 정보에는 고객 이름 주민번호 e메일주소 휴대전화번호가 포함돼 있다. 고객 1만3000명은 비밀번호까지 유출됐다. 회사 측은 나머지 고객에게도 유출 가능성에 대비해 비밀번호를 바꿔 달라고 부랴부랴 부탁했다.

현대캐피탈 측은 금융사고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중 삼중의 보안망이 가동되는 금융회사의 전산시스템이 대량으로 해킹당한 사실 자체가 심각한 사태다. 게다가 이 회사는 두 달간이나 해킹됐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캐피털 업계에서 시장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는 1위 업체가 해커에게 협박을 받은 뒤에야 해킹 사실을 알았다니 그 무신경이 놀랍다.

신용사회에서 계좌번호 비밀번호 등 신용 관련 정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개인정보 유출사고는 가끔 있었지만 금융권의 정보 유출은 그냥 넘길 수 없다. 2008년에도 일부 저축은행의 고객정보가 유출되는 해킹 사고가 있었다. 당시 제2금융권이 보안시스템 미비, 정보기술(IT) 전문인력 부족 등으로 보안에 취약한 것으로 지적됐는데 다시 문제가 터졌으니 금융당국의 책임이 작지 않다.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금융회사의 보안이 전반적으로 취약하다. 외부로부터의 해킹은 아니더라도 금융회사 내부 직원에 의한 고객정보 유출 사건도 가끔 있었다. 금융회사는 내부 직원이라도 비밀번호 등 고객의 정보를 알아내 외부로 빼돌릴 수 없도록 계좌를 여는 단계에서부터 다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금융감독원은 비슷한 금융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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