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학원 보내줬으니 공부는 네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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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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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사교육 시장에도 20 대 80의 법칙이 있다고 한다. 학원생 가운데 20%는 자신을 위해 학원에 다니고 나머지 80%는 학원을 위해 다닌다는 얘기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현재 학원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지인의 증언이다. 대한민국 사교육의 엄연한 현실이다.

학원에 다닌다고 성적이 오르면 전국에 공부 못하는 학생이 몇이나 되겠나. 공부하기 싫은 아이는 과목당 몇백만 원짜리 고액 과외를 시켜줘도 성적은 늘 하위권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사실은 많은 부모가 이를 알면서 자녀를 학원에 보내고 과외를 시킨다. 성적이 안 오르면 학원이나 과외 교사를 바꿔보지만 늘 거기서 거기다. 그러면서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해결하지 못한다며 무능한 정부와 정책만 원망한다. 사교육비 부담에 둘째나 셋째 낳기를 포기하는 세상이다.

상식적으로는 이런 학부모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효과가 별로 없다는 걸 알면서 왜 소중한 돈을 낭비할까. 불안감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다 사교육을 받는데 내 아이만 안 시킨다면 마음이 편할 리 없다. ‘학원 보내줬으니 공부 못하면 네 잘못이다’라는 방어심리도 작용한다. 일종의 책임 회피다. 학원들은 부모의 이런 약점을 잘 이용한다.

해마다 이렇게 낭비되는 돈은 천문학적 규모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0년 사교육비는 총 20조9000억 원이다(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권위 있는 정부기관의 발표이니 믿기로 한다). 20 대 80의 법칙을 적용하면 이 가운데 16조 원 이상이 남의 들러리 서는 비용으로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정밀한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심각한 수준인 건 부인하기 어렵다.

사교육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근절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사교육은 불완전한 학교 교육을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돈을 들여서 자녀의 미래가 행복해진다면 사교육비도 의미 있는 투자다. 다만 기왕 돈을 쓰려면 헛돈을 쓰지 말자는 얘기다. 어렵게 번 돈으로 사교육 업자들만 배불려 주는 짓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사교육에 휘둘리지 않고 효과적으로 이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와 관련해 최근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박사의 사교육 효과 분석 연구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사교육은 일정 학년, 일정 학업 수준의 학생에게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사교육 시간이 늘어날수록 성적이 비례적으로 올라가지 않고 향상 폭이 줄어드는 체감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시간이 많은 학생의 성적이 더 좋았다. 내가 지금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아는, 지적인 호기심이 충만한 학생과 타율적으로 공부하는 학생 가운데 어느 쪽이 학습효과가 높을지는 자명하다.

연구보고서를 살펴보니 부모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학생, 독서량이 많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성적이 높더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자녀를 학원에 보낸다고 부모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결국 이 보고서가 의미하는 바는 이렇다. 자녀의 성적을 높이려면 대화와 독서를 통해 아이가 자신의 미래와 진로에 대해 꿈을 꾸게 하라. 그러면 공부는 스스로 할 것이다. 학원이나 과외는 학습의 보완재로 활용하라. 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실천하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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