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자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스칼릿 오하라와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미국 중년 여성의 사진이 실렸다. 허리둘레 20인치(처녀 시절엔 18인치 반)의 스칼릿과는 거리가 먼 몸매지만 스칼릿 같은 옷을 입고 영화 속에 푹 빠져 사는 ‘바람족(族)’ 중 하나다. 영화에서는 스칼릿이 애슐리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딱지맞고, 그 민망한 장면을 능글맞은 레트에게 들켜버렸다. 그래서 홧김에 순진한 남자 찰스의 청혼을 승낙한 날 바로 전쟁이 터졌다. 1861년 4월 12일 시작된 남북전쟁이다.
▷남북전쟁 발발 150년, 소설 ‘바람과…’ 출간 75년을 맞아 미국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아름답고도 강렬한 사랑의 서사시로 기억된 ‘바람과…’의 소설과 영화를 남북전쟁의 틀에서 다시 읽는 작업도 활발하다. 특히 미국이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고 세금 문제로 논란을 빚으면서 ‘바람과…’를 납세자의 시각으로 보는 해석이 주목받는다.
▷개미허리로, ‘여우짓’으로 남자들을 홀리던 스칼릿은 패전으로 폐허가 된 고향땅 타라에 돌아와 절망했다. 멋진 남부신사였던 아버지는 정신이 나갔고 흑인노예들은 도망쳐 버렸다. 스칼릿은 타라의 흙을 움켜쥐고 부르짖었다. “절대로 다시는 배를 곯지 않겠어.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사람도 죽일 거야.” 타임지 최신호는 “스칼릿을 강인하게 변모시킨 것은 타라에 매겨진 세금이었다”고 분석했다. 세금 낼 돈을 구하기 위해 돈 많은 남자와 애정 없는 결혼을 하고, 무섭게 돈을 벌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큰 정부, 큰 세금에 반대하는 스칼릿의 정서는 지금도 미국 남부 사람들의 성향에 깊이 각인돼 있다. 작은 세금,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보수적 유권자들인 ‘티파티’ 사람들에게 작품의 무대인 조지아와 애틀랜타는 성지(聖地)나 다름없다. 하지만 남북전쟁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남부 사람들은 전쟁이 노예제 때문에 일어난 것을 부인하고 싶어 한다”고 타임지는 지적했다. 대신 남부의 명예와 자유를 위해서 싸웠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불편한 사실일수록 그럴듯한 명분으로 분칠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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