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이전의 컴퓨터는 개인 소장품이 아니었다. 공공기관이나 조직이 보유한 컴퓨터를 다루려면 ‘포트란’이나 ‘코볼’ 같은 컴퓨터 언어를 따로 배워야 했다. 이 구도는 1977년 애플사(社)가 대량생산된 개인용 컴퓨터(PC) ‘애플 Ⅱ’를 내놓음으로써 순식간에 무너졌다. 인간의 언어를 키보드로 쳐 넣는 PC가 보급되자 앨빈 토플러를 비롯한 미래학자들이 ‘제3의 물결’을 이야기했다.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에 이어 정보혁명이라고 하는 제3의 물결이 도래한 것이다.
▷이들이 정보혁명 사회의 예로 꼽은 것이 ‘종이 없는 사회’다. 모든 사람이 컴퓨터를 갖게 되면 온라인으로 자료가 오가기 때문에 문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신문이나 책도 온라인 화면으로 볼 수 있으니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지폐 없는 사회’도 열린다고 했다. 큰돈은 온라인으로 오가고 거래내용은 컴퓨터로 확인되므로 뭉칫돈을 들고 다닐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깨끗한 사회’도 예고됐다. 온라인에서는 문서를 조작할 수도, 급행료를 통해 먼저 처리될 수도 없다는 이유였다.
▷우리는 제3의 물결에 빠르게 올라탔다. 많은 국민이 인터넷뱅킹을 하고, 전자정부에서 민원서류를 발급받고, 홈택스로 세금을 낸다.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는 태블릿 PC의 보급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고 종이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전자책이 나왔지만 사람들은 여러모로 편리한 종이 책을 아직도 더 많이 본다. 현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정보화와 함께 일거에 ‘깨끗한 사회’가 도래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전에 없던 허점이 나타났다. 현대캐피탈 사건에서 보듯 해커가 들어와 분탕질 칠 수 있고, 농협 사건에서 보듯이 운영체제(OS) 삭제 명령이 떨어지면 일순간에 마비돼 버린다. 전기가 끊어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 정보화 세계다. 정보화시대일수록 오프라인과 종이정보를 중시해야 한다. 북한의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국정원 시스템이 별 탈 없이 작동한 것은 인터넷과 내부전산망의 연결고리를 끊어(off) 놓았기 때문이다. 군사작전도 아주 중요한 것은 문서로 적어 인편에 보낸다. 미래학자의 예측은 절반만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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