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은 지름이 22cm 정도, 무게가 7kg 정도인 비금속성 공을 굴려 19m 앞에 놓여 있는 높이 38cm의 핀 10개를 쓰러뜨리는 경기다. 공 하나로 핀 10개를 한번에 쓰러뜨리는 스트라이크가 볼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큰 즐거움이다. 볼링핀이 10개가 아니라 백, 천, 만, 억, 조… 개로 늘어난다면 바로 그 스트라이크의 쾌감은 어떤 느낌일까.
크기가 0.1의 14제곱 m이고 무게가 0.1의 25제곱 kg인 공(이온)을 굴려(쏘아) 1km 앞에 있는 지름 20cm의 탄소 원판을 맞히는 볼링이 있다. 이 볼링의 목적은 원판을 맞히는 게 아니다. 목표를 맞히는 순간 지금까지 아무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이 희한한 ‘볼링’의 즐거움이다.
예를 들어 금(金)으로 된 공을 쏘면 5000개가 넘는 입자가 나올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가운데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원소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2004년 아연으로 된 공을 1700경(京)번 쏘아 초우라늄 원소(원자번호 113)인 자포늄(Japonium·Jp) 한 개를 발견했다. 이 입자는 344마이크로초(μs·1마이크로초는 100만 분의 1초) 동안 존재했다가 사라졌다. 이런 ‘스트라이크’의 쾌감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이 희한한 ‘볼링’으로 우주의 기원을 밝히거나, 희귀한 동위원소를 발견하거나, 새로운 소재 및 에너지를 개발하는 토대가 되는 혁신적인 ‘스트라이크’를 만들어 낸다. 지금까지 나온 노벨 물리학상 101개 가운데 20% 정도가 기념비적인 ‘스트라이크’에 대해 시상한 것이다.
이온을 던지는 이 희한한 ‘이온 볼링장’이 바로 정부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에 설치할 핵심시설인 중이온가속기 KoRIA(Korea Rare Isotope Accelerator)이다. 세계의 과학자들이 ‘스트라이크’의 꿈을 안고 찾아올 세계 최고수준의 ‘볼링장’이다.
이 ‘이온 볼링장’을 자기 지역에 유치하겠다고 호들갑스럽게 서명하고, 시위하고, 삭발하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서명을 많이 받을수록, 시위가 요란할수록, ‘빡빡이(삭발한 사람)’가 갑자기 늘어날수록, 다른 국책사업을 인질로 중앙정부를 협박할수록 과학벨트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유치(誘致) 경쟁인가, 유치(幼稚) 경쟁인가.
‘이온 볼링장’을 설치하는 데 난데없이 지진이나 지진해일(쓰나미)의 위험을 따지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특정 지방에 대한 특혜나 홀대라고 시비를 걸며 교육과학기술부는 물론이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기획단 고위 공무원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위원들의 출신 지역까지 꼬치꼬치 묻는 사람은 누구인가.
‘스트라이크’의 꿈을 안고 ‘이온 볼링장’에 찾아올 세계의 과학자들은 지진이나 쓰나미보다 그 지역의 서명, 시위, 삭발, 협박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더 두려워할 것이다. 논리가 아니라 주장이 판을 치고, 과학이 아니라 정치가 기승을 부리는 곳을 혐오할 것이다. 과학의 토양은 민주주의와 질서, 그리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비옥한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을에서 정승을 몇 명 배출했다는 명예를 자랑스러워하는 조선시대 주민처럼, 우리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고객의 희열에 보람을 느끼는 골프장 업주처럼, 우리 지역에서 이뤄진 세계적인 과학자의 ‘스트라이크’(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같이 환호하고 긍지를 느낄 수 있는 지역이 과학벨트를 설치해야 할 바로 그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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