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논란이 끝나지 않은 KAIST 학생 자살사건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우리 사회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다른 대학에서도 일어나는 문제인데 KAIST만 문제를 삼는다는 의견, 이제 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안이 좌초될까봐 걱정하는 의견, 이러다가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이 없어져 국가경쟁력이 후퇴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단기간에 한곳에서 여러 명이 자살을 했다면 이와 관련된 공통된 환경적 원인을 반드시 확인해봐야 한다. 제대로 해결하려면 어떤 절차가 필요할까.
첫째, 학생 자살을 둘러싼 배경에 대한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학생 자살의 근본적 동기가 무엇인지,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졌을 때 학교에서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정말 KAIST의 경쟁적 학습 분위기가 학생들을 극단적으로 내몰고 있는지 등을 제대로 분석하여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KAIST에서는 이런 절차를 제대로 밟기 전에 현 총장의 책임을 묻고 사퇴를 거론하는 방향, 즉 권력을 이양하는 쪽으로 먼저 해결하려고 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구성원들이 참으로 원시적인 방법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한 셈이다. 다행히 현 총장 사퇴라는 극단적 방안이 유보되고 좀 더 시간을 두고 상황을 분석할 여유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살 원인을 우울증 등 개인의 정신적 취약함으로만 몰고 가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성장 중인 어린 영재들에게 현재의 경쟁적 성적관리 방법이 적합한지, 정신적 공황에 빠졌을 때 왜 제때 도움을 주지 못했는지를 학교 시스템 차원에서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자살을 막을 수 있다.
자살 동기 객관적 분석이 먼저
둘째, KAIST 내 다른 전문가들, 즉 정신건강 전문가와 교육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자문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초중고교와 대학 등 우리 교육기관은 학교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가급적 학교 관계자들 선에서 조용히 해결한다. 하지만 학교는 공부 이외에 다양한 복지서비스, 신체적 정신적 건강서비스까지 제공해야 한다. 이런 다양한 서비스를 위해 여러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데도 효율적인 자문시스템을 구축하지 않고, 교사들이 모든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추어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 물론 학생들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학교가 지기 때문에 교사 혹은 교수들의 판단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KAIST 학생 자살사건의 경우 정신건강 전문가가 개별 자살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것이 과연 학교의 전반적인 커리큘럼과 연관이 있는지, 어린 영재들을 위해 어떠한 모델의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다. 또한 연구 중심의 대학원 이상 과정과 달리 전반적인 대학 교육이 필요한 학부 과정의 경우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실력뿐 아니라 성숙한 인격도 갖춘 진정한 인재로 양성하기 위해 커리큘럼을 재조정할 필요도 있다.
셋째, 자녀의 자살로 충격과 비탄에 잠긴 그 가족들을 위로하고, 필요하면 전문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이 학생들과 친하게 지냈던 동료 학생이나 이 사건으로 정신적 상실감이 큰 학생들에게도 개별 혹은 집단 상담 서비스를 통해 충격을 완화시켜야 한다. 자살은 당사자의 불행이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상실감, 자책감, 의욕 상실 등의 심한 정신적 트라우마를 주기 때문에 이를 완화할 수 있도록 전문적 정신건강 서비스가 제공돼야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할 수 있다.
넷째,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영재들이 모여 있는 KAIST에서 학생들이 줄지어 자살하게 되는 좀 더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파악하여 큰 사회적 틀에서 예방하는 시각이 필요하다. 마치 미국 로스앤젤레스 폭동의 표면적 원인은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과잉진압에 있었지만 근본적 동기는 만성적인 흑백갈등, 빈곤 문제, 인종차별로 야기된 문제가 더 컸던 것처럼 이번 KAIST 학생 자살사건 역시 우리 사회의 교육문제와 관련돼 있다고 본다.
전문가 참여 예방시스템 갖춰야
우리 사회는 빠른 경제 성장에 힘입어 무한경쟁의 논리가 사회에 팽배해 있고 교육 분야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은 재능을 다르게 타고나므로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근본적인 철학이다. 바로 이 점에서 KAIST의 어린 학생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근본 원인을 유추해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은 KAIST가 우수한 과학자를 양성하고 우수한 성과를 내는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현 총장이 제시한 세계적 경쟁 수준을 확보하려는 개혁방안은 옳겠지만 성공적 개혁을 위해서는 많은 전문가가 참여해 세계적 수준의 인재 양성을 위한 좋은 교육 프로그램, 정신건강 증진 프로그램도 함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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