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정영환]대법관 증원보다 시급한 건 상고허가제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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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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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무처장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무처장
국회 사법개혁특위는 대법관 수를 14명에서 20명으로 6명 늘리려 한다. 이는 사법부 최상층의 틀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사법부의 근간을 다루는 것으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대법관 증원 주장의 명분은 국민의 신속한 권리 구제다. 이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상고사건 수를 보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상고사건은 3만6000여 건으로 실제 사건을 처리하는 대법관 12명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300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 이런 사건 부담률은 가히 살인적이다. 법조계에는 대법관이 되면 첫 한 달 정도는 대법관이 된 기쁨을 누리지만 그 후에는 사건 부담으로 힘들어하다가 대법관을 마치면 사건에서 해방돼 또 다른 기쁨(?)을 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회는 국민의 권리를 신속하게 구제하고 대법원의 이런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대법관 증원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그런데 좋아해야 할 대법원이 반대하고 있다. 대법원의 이런 태도가 사법부 이기주의라고만 할 수 있을까?

대법관 6명을 늘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2010년 상고사건 수를 기준으로 하면 증원된 대법관을 포함해 대법관 18명이 1인당 연간 2000여 건을 처리해야 한다. 현재와 비교해 사건 부담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할 수 없다. 상고허가제를 시행하는 미국과 독일 등의 대법관 사건 부담에 비하면 여전히 천문학적이다. 대법관 수를 늘려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이겠다는 생각 자체가 대법원 기능과 대법관 역할이라는 면에서 보면 연목구어(緣木求魚)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법관의 사건 부담을 줄이면서 국민의 권리 구제에 충실할 것인가? 우리 사법제도는 신속 처리 면에서는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선진 사법제도를 가진 나라와 비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앞서 있다. 따라서 대법원의 기능을 논할 때 ‘신속한’ 권리 구제보다는 ‘충실한’ 권리 구제에 집중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대법관의 사건 부담을 줄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우선 대법원에서 심리하는 사건을 대폭 줄이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법원의 법령 해석 통일과 권리 구제에 꼭 필요한 사건을 선별적으로 처리하게 해 현재의 3만6000여 건을 3000∼4000건으로 줄여야 한다. 대법원 기능에 맞게 사건을 거르는 장치가 필수다. 약식사건 벌금액을 줄이려는 건, 구속사건의 미결구금일수를 늘리기 위한 건 등은 대법원이 처리할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검증된 장치가 미국과 독일이 시행 중인 상고허가제다. 상고 이유만으로 상고의 타당성 여부를 거르는 장치로 미국의 경우 2009회기연도 연방대법원에 접수된 8159건 중 82건만 구두변론(argument)을 거치고 그중 77건만 판결로 처리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대법관 수를 늘려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

대법관의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3억 인구의 미국 대법관은 9명이다. 미국은 상고허가제를 통해 처리하는 사건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대법관 개개인의 역할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 대법관은 한 나라 분쟁 해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양적 개념으로 접근할 수 없고 질적 접근을 해야 한다. 대법관은 수량적 존재가 아닌 가치적 존재다.

필자는 대법관 증원을 통한 분쟁의 양적 해결이 아닌 대법원의 본래 기능과 대법관의 역할 강화를 통한 충실한 권리 구제를 바란다. 대법관 수를 늘리는 것은 좋은 방안이 아니다.

정영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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