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7 재·보궐선거 결과로 인해 정치권이 분주해졌다. 한동안 낮은 지지율로 위축돼 있던 야당은 모처럼 기지개를 켰다. 무서운 민심을 확인한 여당은 다가올 정치적 쓰나미의 강도에 촉각을 세우며 바짝 자세를 낮추었다. 최고위원 총사퇴를 선언하며 고개를 숙이긴 했지만 선거 결과에 대한 책임 소재와 당청 관계의 재정립, 그리고 향후 정치일정을 둘러싼 잠재적 갈등요인은 여전히 발아 중이다. 1년 10개월의 잔여 임기를 앞둔 상황에서 인사쇄신의 카드를 쥐고 있는 청와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5년前 지난 정권과 닮은꼴 상황
한국정치의 주기적 반복성 때문일까. 이명박 대통령의 고민은 꼭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의 것과 닮은꼴이다.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 참패를 경험한 노무현 대통령도 한 달 후인 7월 3일 임기 1년 6개월을 앞두고 인사쇄신을 단행했다. 널리 인재를 찾는다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당시 부총리급이던 재정경제부 장관과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에 전·현직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명하였다. 이는 세 명의 부총리급 장관을 모두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 출신으로 임명해 강력한 친위내각을 구축하려는 전략이었다.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장관이 청와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한편 정책실장에는 청와대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던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을 임명하였다. 새로운 사람을 널리 구하는 인사원칙보다는 레임덕을 걱정하는 조급한 마음과 미더운 동지들과 함께 국정을 마무리해야겠다는 현실적 판단이 앞섰던 것이다. 그러나 강력한 친정체제를 출범시키려던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쇄신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여당 내부 일부로부터도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면을 전환하고 레임덕을 막기 위해 단행했던 인사쇄신이 오히려 레임덕을 가속화하는 단초를 제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4·27 재·보선 이후 인사쇄신의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그 폭과 내용에 대한 소문이 무성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첫 대통령실장이었던 류우익 주중대사의 귀환이나 이미 사의를 표명한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내년 총선 출마 예상자로 거명되는 청와대 비서관들의 교체를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한편 구제역 파동과 관련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나 전세대란과 물가불안 같은 민생문제에 책임이 있으면서도 재임기간이 비교적 길었던 국토해양부와 기획재정부 장관도 교체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어려운 정치적 국면을 전환하고 잔여임기의 국정방향을 재정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사쇄신은 언제나 대통령이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카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사쇄신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특히 이번 인사쇄신은 궁극적으로 국정쇄신을 염두에 둔 전략적 포석이어야 한다.
회전문 인사땐 레임덕 부를수도
이명박 대통령은 우선 강력한 친정체제를 통해 국정을 효과적으로 마무리하고자 했지만 오히려 레임덕을 촉발하며 좌절을 맛보았던 노무현 대통령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둘째, 대통령의 정치적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커갈수록 정치생명을 걸었던 동지가 미더울 수밖에 없지만 회전문 인사는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 호흡을 맞췄던 편한 인물만 고집하다 보면 국민의 공감을 얻기는커녕 진정한 국면 전환도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셋째, ‘마무리 국정’의 암초가 될 수 있는 참모들의 비리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능력이 검증된 관료나 업무형 전문가, 도덕적 참신성을 갖춘 인물을 적극 중용해야 한다. 진부한 인물로 채워진 강력한 친정체제보다는 창조적 해체를 통해 거듭난 참신한 체제가 마무리 국정에 훨씬 효과적이다. 인사쇄신의 핵심은 방향과 인물이다. 인사쇄신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국정을 쇄신하고 어떤 인물로 쇄신의 진정성과 역량을 갖출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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