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외교관 상아 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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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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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품 재료로 인기가 높은 코끼리 상아(象牙)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려 밀거래가 성행한다. 가격도 비싸다. 암거래 시세는 kg당 1800달러(약 190만 원) 정도다. 최근에는 아프리카에 대거 진출한 중국 기업들이 상아에 눈독을 들이면서 ‘중국의 굴기(굴起)가 아프리카 코끼리를 죽이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국제사회는 1973년 코끼리 등 멸종 위기에 처했거나 보호가 필요한 야생 동식물의 과도한 포획과 거래를 제한하기 위한 협약(CITES)을 채택했지만, 돈벌이에 눈먼 밀거래업자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미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연간 암거래되는 보호종 동물의 상품 시장 규모가 200억 달러(약 21조 원)에 이른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공관장으로 근무하다 임기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외교관 P 씨가 이삿짐 속에 상아 16개(총 60kg)를 넣어 들어오려다 세관에 적발됐다. 우리나라가 CITES에 가입한 1993년 이후 상아 밀수가 적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것도 하필 외교관이 연루된 상아 밀수라니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다. P 씨는 “선물로 받아 보관해온 상아인데, 현지인에게 이삿짐을 싸라고 맡겨 놔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

▷북한 외교관들은 1980년대부터 밀수로 악명이 높았다. 금괴 다이아몬드 상아 담배 마약 등 돈만 된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외화벌이나 현지 공관의 부족한 운영비 충당, 외교관 개인의 돈벌이 등 밀수 목적도 가지가지다. 외교관들에게 부여된 면책특권을 범죄의 방패막이로 악용해온 것이다. 북한 외교관 밀수 사건이 터질 때마다 우리는 ‘민족 망신’이라고 부끄러워했다.

▷외국여행이 힘들던 시절 기념품으로 상아 도장을 새겨오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멸종위기동물 보호 의식이 확산되면서 이제 일반인도 상아 기념품을 사오지 않는다. 기념품도 아니고 원형의 상아를, 그것도 16개나 들여왔으니 장삿속이라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열악한 여건에서 고생하는 아프리카 근무 외교관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사건이다. 상하이 총영사관 여성 스캔들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교통상부에 망신살이 겹쳤다. 한국 외교관들의 전반적인 기강 해이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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