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아파트 건설 용지를 분양받은 10개 대형건설사 가운데 6개사가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2일 밝혔다. 공무원들이 단신 부임하거나 직장을 아예 옮기겠다고 하니 아파트를 지어봐야 손해 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정부과천청사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건설사의 선택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식사 자리는 물론이고 각종 모임에서도 내년 4월부터 세종시로 옮긴 뒤 겪게 될 생활 변화에 대한 불안이 쏟아진다.
배우자에게서 ‘주말부부’ 통보를 받은 간부급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다. 자녀교육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미혼 공무원들은 배우자를 찾지 못할까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에 남는 다른 부처나 대학, 기업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기는 미혼 공무원도 나오고 있다. 공무원들의 ‘세종 엑소더스’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신설된 국가과학기술위원회로 옮길 공무원 7명을 뽑는 데 30명이 넘는 직원이 몰렸다. 지난해 각각 2명을 다른 부처에서 수혈 받은 선거관리위원회와 여성가족부는 엄청난 경쟁 끝에 재정부와 고용노동부 출신 공무원을 받았다. 인기 영순위였던 재정부를 마다하고 서울에 남는 다른 부처로 옮기려는 모습을 보면서 고위 관료들은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혀를 찬다.
정부 부처에 비해 직장을 옮기기 쉬운 국책연구기관은 더 심각하다. 국내 최고 권위의 ‘싱크 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9명의 박사급 연구인력이 빠져나갔다. 1년 남짓한 기간에 박사급 연구원의 16%가 자리를 떠난 것이다. 박사급 연구인력 35명을 보유한 조세연구원도 올해 벌써 3명이 사표를 냈다. 얼마 전까지 주요 대학의 교수직이 아니면 좀처럼 자리를 옮기지 않던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은 기업은 물론이고 대학 시간강사로라도 서울에 남을 수 있다면 감지덕지한다.
이들의 선택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렵다. 세종시가 이들을 받아들일 여건을 마련하지 못한 탓이 더 크기 때문이다. 애당초 눈앞의 표를 노린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으로 결정된 세종시 이전이 원만하게 추진될 리 없었다. 게다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세종시 손님이 다 떨어져 나간 형국이 됐다.
내년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지는 ‘선거의 해’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선심성 복지와 세금 감면으로 표심을 잡아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세종시처럼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는 포퓰리즘 법안이 얼마나 쏟아져 나올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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