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democracy)란 말은 그리스어의 ‘demokratia’에서 나왔다. ‘demos(국민)’와 ‘kratos(지배)’의 두 낱말이 합쳐진 것이다. 우리 헌법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국민의 뜻이 항상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의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시도하되 협상이 결렬되면 다수결(多數決)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는 원칙을 지킨다. 총선에서 의석 분포를 갈라준 것도 국민의 뜻이다.
▷국회 전체 299석 중 한나라당은 172석(57.7%), 민주당은 87석(29.2%)을 차지하고 있다. 한나라당 의석이 민주당의 2배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회에서 다수결보다 여야 합의가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소수파가 반대하면 의안이 국회를 통과할 수 없으니 사실상 만장일치제와 다름없다. 모든 법안의 길목을 지키고 있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법안의 자구(字句)를 심사하는 곳인데도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장은 “여야 합의가 안 됐다”며 주요 법안 처리를 막무가내로 막는다. 첫 발의로부터 치면 5년 반이 경과한 북한인권법안은 아직도 법사위에 상정조차 안 됐다.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도 무기력하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다.
▷민주당이 전체 113개 의석 중 69%(78석)를 차지한 서울시의회는 전혀 다른 작동원리로 움직인다. 다수결 원칙이 최우선이다.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은 2일 민주당이 발의한 ‘서울시 교육재정부담금 전출에 관한 조례안’을 서울시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통과시켰다. 올 들어 민주당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발의한 조례안은 모두 통과됐지만 한나라당 소속 오세훈 시장이 발의한 조례안은 제동이 걸렸다. 시의회 출석을 거부하는 오 시장은 ‘괘씸죄’에 걸려 있다.
▷김명수 시의회 민주당 원내대표는 “한나라당과 항상 협의해 안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무슨 협의를 했느냐. 다수결로 모든 안건을 처리하는 건 횡포”라고 반발한다. 국회에서는 여야 합의가 우선이고 서울시의회에서는 다수결이 우선이니, 서로 다른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모순은 웰빙 한나라당과 싸움꾼 민주당이 함께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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