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미야의 東京小考]저널리즘의 각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5일 03시 00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오사카(大阪)에서 발행된 아사히신문 호외가 ‘대혼란의 도쿄’라는 제목으로 4장의 사진을 크게 실은 것은 간토(關東) 대지진 발생 사흘 후인 1923년 9월 4일이었다. 한 젊은 기자가 불타서 내려앉아 버린 도쿄 본사에서부터 사진들을 품에 안고 오사카에 가까스로 도착한 덕분에 사진을 실을 수 있었다.

호외의 뒷면은 이 기자의 수기로 가득 찼다. 무너진 잔해에 막혀 길을 돌아가야 했고 다리가 붕괴된 강을 헤엄쳐 건너기도 했다. 돼지가 가득 실린 화물열차에 끼어 타거나 호우가 내리는 산을 걸어 넘는 등 먹는 둥 마는 둥 보낸 사흘이었다고 한다. 각지에서 목격한 시신 더미와 비탄에 젖은 사람들의 모습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라디오도 없었던 시대, 이 호외는 대대적으로 읽혔다.

당시 통신이 완전 두절돼 도쿄에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외국 통신사와 신문도 이 호외에 매달렸다. 호외는 세계 각국 신문에도 실려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세계에 특보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한시라도 빨리’라는 기자의 일념이었다.

그로부터 88년이 지났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에서는 생생한 영상이 그대로 세계에 전해졌다. 센다이(仙臺) 시 주변에서 주택과 자동차를 휩쓸고 공항을 덮치는 쓰나미의 모습을 상공에서 전한 NHK의 TV 중계는 많은 나라에서 동시에 전파를 탔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시대 변화를 말해준다. 20세기에 급격하게 진행된 과학문명 때문이지만, 그만큼 피해의 질도 높아졌다. 전기화가 극도로 진행되고 자동차 사회에 흠뻑 젖어드는 등 생활양식이 완전히 바뀐 탓이다. 그리고 가장 피해를 많이 끼친 것은 수많은 피난민을 낳고 나아가 수습에 시간이 걸리고 있는 원자력발전소 사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정책과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근본에서부터 되돌아보게 됐다.

언론인 자성의 계기 된 대지진

저출산 고령화라는 근본 문제로 인해 전망이 보이지 않는 일본이 더 한층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된 것이지만, 이것은 큰 발상 전환의 기회이기도 하다. 정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는 역할이 저널리즘에도 요구되고 있다.

그런 중에 나는 이달 1일 아사히신문의 주필이 되었다. 기자들의 선두에 서서 붓대를 잡고 ‘저널리즘 정신을 구현하며 지면과 보도의 성가를 높인다’(아사히신문 주필 규정)는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지진 후 일본 본연의 자세를 찾는 책무를 지게 됐다.

원자력발전에 의존하지 않는 사회를 서둘러 만들기 위해 자연에너지의 개발에 21세기의 국운을 걸어야 한다. 동북 지방의 재건을 일본 재건의 추진력으로 삼고 다음에 예상되는 도쿄 부근에서의 대지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동북 지방에 수도 기능을 분산시키면 어떨까. 지진 재해로 재인식된 화(和)의 정신과 해외의 지원 무드를 활용해 새로운 국제협력의 깃발도 흔들자. 지금은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 머리를 스친다.

언론인으로서 하나의 반성도 있다. 자민당 장기 정권의 웅덩이에서 벗어나 일본 민주주의를 제대로 세우기 위해 일찍이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계속 말했던 일이다. 기본적으로 그게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탄생한 민주당 정권의 실태에 기대가 연달아 배신당해 왔다. 어느 정도는 혼란도 예상하고 있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나도 어리석었음을 부끄러워하고 있다. 일본 정치에 성숙과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선거제도를 포함해 ‘정치개혁’을 다시 하도록 요구해 나가려 한다.

문득 생각나는 것은 이번 쓰나미에서 역사에 남을 결정적 순간을 찍은 일선 카메라맨들이다. 바로 얼마 전 재해지를 여기저기 방문하면서 만났다.

미야코(宮古) 시에서는 부풀어 오른 바다가 배와 차를 휩쓸며 둑을 한숨에 넘는 것을 코앞의 시청 건물 4층에서 지방 방송국 카메라맨이 찍었다. 취재 때문에 제방 옆을 달려가던 그는 시장이 큰 소리로 부른 덕분에 생명을 구했다. 그 직후의 끔찍한 광경. 엄청난 사태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카메라를 들이댔다. 지금도 이 광경을 꿈에 보고는 깨어난다고 한다.

게센누마(氣仙沼) 시에서는 또 다른 지방 방송국의 베테랑 카메라맨이 도로에서 쓰나미가 오길 기다렸다. 바로 옆에서 자신의 집이 떠내려갔지만 길가 계단을 차오르면서 물결치는 발밑의 탁류를 계속 찍었다.

위험 무릅쓴 기자정신 되새길 것

마이니치신문의 젊은 사진기자는 급유(給油)를 위해 내린 센다이공항으로부터 가까스로 날아오른 헬기 안에서 소나무 숲을 넘어 덮쳐오는 쓰나미를 찍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모든 게 위험을 무릅쓴 일이었지만 박진감 넘치는 사실을 전하고 싶다는 기자 정신이 살아 있었다. 곰곰이 생각하면, 실은 언론에 요구되는 저널리즘 정신도 이와 비슷하다. 타이밍과 초점이 중요한 데다 위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힘이 붙지 않기 때문이다. 무모함과는 다른 냉정함도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다시 배웠다는 느낌이 든다. 굳이 타사의 일을 소개한 것은 격렬한 경쟁을 자각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이 칼럼은 주필 취임에 즈음해 1일자 아사히신문에 실은 글이다. ‘도쿄소고’의 독자들도 읽어 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감히 거의 그대로 싣는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아사히신문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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