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방송 KT스카이라이프의 SBS 고화질(HD)채널 6번이 일주일째 나오지 않고 있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70만 가입자들은 205번 표준화질(SD)채널로 SBS를 봐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이번 사태는 두 회사 간 프로그램 이용료 협상이 난항을 빚자 SBS가 지난달 27일 방송 공급을 끊으면서 시작됐다.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지상파방송과 이를 가입자에게 전달하는 유료방송(케이블, 위성방송, IPTV)의 다툼으로 실제 방송이 중단된 것은 처음이다. 방송 중단 직후 스카이라이프에 걸려온 시청자의 불만 전화는 하루 1000통을 넘어섰다.
스카이라이프는 최근 MBC와 맺은 계약과 동일한 안을 SBS에 제시했으나 SBS는 별개의 협상안을 원하면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스카이라이프는 MBC와 가입자당 월 280원씩 주되 향후 MBC와 케이블의 계약 조건에 따라 액수를 재조정하는 계약을 했으나 SBS는 액수 조정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규제당국인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업자 간 협상에 끼어들기 어렵다”며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다가 중단 기간이 길어지자 뒤늦게 두 회사를 모두 제재할 방침을 밝혔다. 하지만 제재를 하려면 시청자 피해상황 조사, 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야 하는데 빨라야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한국 방송시장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했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경쟁법 전문가인 홍대식 서강대 법대 교수는 “지금의 사태는 방송시장이 제 기능을 못하는 ‘시장 실패’ 때문에 발생했다”며 “시청권 보호와 시장 기능의 정상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공급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가진 지상파가 위성방송과의 협상을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에선 정상적인 가격 결정이 어렵다는 것이다. 스카이라이프가 MBC와 맺은 계약과 동일한 조건으로 KBS2, SBS와 계약을 맺는다고 해도 전체 순이익의 40%가량을 이들 3사에 주게 된다. 앞으로 지상파와 케이블의 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환경을 방치한다면 방송시장의 경쟁은 누가 프로그램을 잘 만드느냐가 아닌 누가 독과점 사업자의 선택을 받느냐에 좌우될 수 있다. 이는 시청자의 시청권 보호, 콘텐츠 산업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에도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의 공기(公器)에 해당하는 방송사업자들이 제 잇속 차리기에 급급해 시청자의 불편을 외면하는 건 정도가 아니다. 시장이 왜곡돼 자율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외부의 힘이 나설 수밖에 없다. 방통위의 적극적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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