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한나라당 소속 경기도지사 시절 자유무역협정(FTA)의 열렬한 옹호자였다. 2006년 7월 한나라당 대선 주자의 길을 닦기 위한 ‘민심 대장정’을 할 때도 자신의 블로그에 “노무현 대통령이 FTA라는 어려운 결단을 한 것을 높이 평가해주고 더욱 힘 있게 추진하도록 격려해주자”고 썼다. 2006년 12월 한 특별강연에선 “FTA를 통한 수출활로 개척은 무역의존도가 70%를 넘는 우리로선 최선의 국가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3월 한나라당 탈당 이후에도 한동안 ‘소신’엔 변함이 없는 듯했다. 2007년 4월 기자간담회에서는 “한나라당 당적을 버렸지만 FTA에 대한 입장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민주당 대표를 맡았던 2008년 4월 18일에도 “FTA는 우리가 국제적인 경쟁사회에서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난해 10·3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표가 되면서부터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며 손 대표에게 “FTA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라”고 압박하자 “피해상황 보완을 과제로 삼겠다”며 슬쩍 재협상 쪽으로 몸을 틀었다.
급기야 이달 4일엔 한-유럽연합(EU) FTA 비준을 가로막고 나섰다. 반대 사유에는 “민주노동당 등과의 선거연대를 고려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유도 포함됐다. 그러면서도 “중산층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만큼 처리는 한다”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5일 서울대 어린이병원 방문길에 기자들과 만나서는 “충분한 보완대책 없이 FTA를 통과시키는 것은 중산층의 바람이 아니다. 더 면밀한 검토와 대책 마련을 위한 시간을 달라는 것이지 맹목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고 알쏭달쏭한 해명을 늘어놓았다.
좌파진영과의 야권연대와 중산층을 잡기 위한 ‘FTA 국익론’ 사이에서 저울질할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처럼 비친다. 하지만 6월이 된다고 해도 민노당이나 당내 좌파계열의 태도가 바뀔 리 만무하다. 결과적으로 손 대표의 이중행보는 실리도, 명분도 모두 잃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손 대표는 2007년 3월 28일 청주대 특강에서 “FTA에 찬성하지만 지금 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은 기회주의”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명색이 대선주자요, 제1야당 대표가 국가 미래를 좌우할 과제 앞에서 자신이 말했던 가치와 철학까지 손바닥 뒤집듯 한다면 특강을 들었던 대학생은 물론이고 자신을 뽑아준 경기 성남 분당을 유권자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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