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선동열과 후지사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시속 150km 이상으로 질주하는 자동차. 딱 걸렸다. 요란하게 울리는 경찰차의 사이렌. 그런데 이게 누구인가. 나라의 보물이라는 ‘국보’ 선동열 아닌가. 당황한 쪽은 오히려 경찰관이었다. “에이 여보쇼, 당신 공보다 빨리 달리면 어떡하나.” 선동열이 한창 강속구를 뿌려대던 20여 년 전 얘기다. 당시 그의 눈이 벌겋게 충혈이 됐는지, 딱지를 뗐는지는 노코멘트. 이런 경우에도 공소시효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제 와서 괜한 태클은 걸지 말자.

선동열을 곁에서 지켜본 기자들은 야구 말고 다른 걸로도 자주 놀랐다. “그렇게 마시고도 또 승리투수가 됐네.” “녹색에선 뭐든 잘하네. 그라운드는 물론이고 필드와 테이블까지.” 뭐 이런 식이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허물이 될 수도 있는 일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덮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선동열’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고 보면 선동열은 참 행복한 선수였다. 그만큼 팬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지지와 사랑을 받은 이는 드물었다.

조훈현의 사형(師兄)이자 정신적 스승으로 2009년 작고한 일본의 후지사와 슈코는 ‘괴물’로 불린 기인 중의 기인이었다. 평생 술과 도박, 그로 인한 빚더미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바둑 실력만큼은 최고였다. 명인, 천원, 기성전 초대 대회를 석권해 ‘1기의 사나이’로 불렸다. 일본 최고 기전인 기성전에선 6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1983년 30세 연하의 조치훈에게 3승 후 4연패로 물러났을 때 그는 57세였고, 암 투병 중이었다. 1년에 기성전 4판만 이기면 술병 하나 든 채 자취를 감췄던 그의 기행은 그가 ‘후지사와’였기에 모두 사면이 됐다.

최근 추신수와 김연아를 보면서 아쉬움이 남았다. 이들은 선동열이나 후지사와처럼 앞으로 최고의 반열에 오를 자격을 갖춘 선수들이다. 추신수는 음주 운전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0.201%였다. 소문난 술고래로 폭탄주 예찬론자인 그의 술 실력으로 볼 때 꽤나 마신 모양이다. 문제는 그곳이 미국이고, 선동열 시절과는 달리 세상이 한참 바뀌었다는 점이다. 미국 경찰은 음주 운전자를 곧바로 범죄자로 취급한다. 인터넷에는 단속되는 과정의 굴욕 동영상이 벌써 쫙 깔렸다. 팬의 입장에선 그가 이후 출전한 2경기에서 홈런을 펑펑 터뜨려 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야속하게도 결과는 무안타였지만 말이다.

김연아는 지난달 말 끝난 모스크바 세계피겨선수권대회에서 지젤과 오마주 투 코리아로 다시 한 번 감동을 안겨줬다. 후지사와처럼 1년여 만에 공식대회에 나선 그는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하지만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했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특임대사인 김진선 전 강원도지사는 “김연아가 다음 시즌에도 그랑프리 시리즈는 나가지 않겠다고 왜 미리 말했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평창 유치 홍보대사인 김연아는 한국을 알리는 얼굴인데 그런 일이야 유치 여부가 판가름 나는 7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이후에 거론하면 되지 않느냐는 얘기였다.

추신수는 차량의 내비게이션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데다가 행인도 아닌 경찰에게 길을 묻다가 음주 운전이 발각됐다. 두 선수 모두 최고 스타로서 걸어야 할 길을 가리키는 항법장치에 대한 중간 점검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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