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고미석]아버지도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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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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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전문기자
고미석 전문기자
“언제…와….” 수화기 저편에서 희미하게 아버지는 말했다. “토요일에 간다니까.” 병원에 입원 중인 딸은 퉁명스럽게 전화를 끊었다. 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40인치 넘던 배는 홀쭉해지고 뼈만 남은 아버지가 안쓰럽지만 몇 년째 간병에 매달려 시들어가는 어머니는 더 걱정이었다. 딸도 엄마가 된 지 오래다.

진실된 모습 너무 늦게 깨달아

퇴원하는 길로 찾아간 아버지는 일주일 전과 딴판이었다. “나 왔어! 왜 아무 말 안 해?” 투정부리는 딸에게 가까스로 눈빛으로만 반가움을 표시한 아버지는 바로 그날 세상과 작별했다. 자식이 수술 받고 무사히 돌아오는 모습을 보고 가려고 병들고 지친 몸으로 먼 길 미루고 버티었나 보다.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바뀐 지 한참 지났어도 일상에서 또는 문학과 영화에서도 많은 자식들은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더 가깝게 편안하게 생각한다. 가족의 생계를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공포와 중압감을 자식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일까. 지금 젊은 세대야 조금 다를 테지만 중년 이후 세대에 있어 아버지는 어머니에 비해 강하고 권위적 존재였다. ‘실패도 패배도, 죽을 것 같지도 않은 아버지’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엔 애틋한 추억보다는 오히려 같이 있으면 좀 서먹할 정도로 애정표현이 서툴렀던 어른으로 각인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의 진실된 모습을 깨닫는 순간은 늘 너무 늦게 찾아온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아들을 데리고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돈이 무서워서 목욕탕도 가지 않는 걸 거라고/아무렇게나 함부로 비난했던 아버지/등짝에 살이 시커멓게 죽은 지게자국을 본 건/당신이 쓰러지고 난 뒤의 일이다/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까지 실려 온 뒤의 일이다/그렇게 밀어드리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차마/자식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등/해 지면 달 지고, 달 지면 해를 지고 걸어온 길 끝/적막하디적막한 등짝에 낙인처럼 찍혀 지워지지 않는 지게자국/아버지는 병원 욕실에 업혀 들어와서는 비로소/자식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신 것이었다.”(손택수의 ‘아버지의 등을 밀며’)

탯줄로 이어진 어머니의 사랑과 그 빛깔이 다르다고 아버지의 마음도 무채색일까. “그저께 너의 편지를 보고서, 너의 병세가 의심스럽다는 것을 알았다. 염려스럽고 염려스럽구나! 어제는 어떠하였는지 알지 못하겠구나. 대개 너는 혈기가 본래 약한 데다가 이전에 추운 곳에서 잠을 자게 해서 마음에 걸린다.” 조선의 대유학자 퇴계 이황은 이렇듯 자상한 마음을 편지에 담아 아들에게 보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은 재임 시절 아픈 아이들을 매일 밤 보살피느라 노심초사했으나 한 아들을 잃었다. 링컨은 “이 아이는 세상을 살기에는 너무 착한 아이였다”고 한탄하면서 장례를 치른 한참 후에도 방문을 걸어놓고 홀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사랑합니다” 말 한마디 왜 못했을까

퇴원하는 날 아버지를 배웅한 그 딸은 아직도 마지막 통화를 기억한다. “빨리…와….” 어떤 번호로도, 어떤 첨단 정보통신기기로도 아버지가 전화를 더는 받지 못한 지 9년째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함께할 시간을 다시 허락받는다면 이 말 꼭 하고 싶은데….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생(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같았으므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 하실까 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문인수의 ‘쉬’)

아이 돌보기도 벅찬 사람에게 어른을 제대로 섬기는 일은 무엇인가. 아이와 부모 사이의 거리는 얼마큼인가. 오월의 달력에 붉게 박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의 간격이 아득하다.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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