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윤영관]동아시아 협의체, 이슈별 접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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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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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인들은 동아시아가 유럽처럼 평화롭고 안정된 관계를 이룰 수 있을지 궁금해한다. 국가주의 부상과 국방예산의 가파른 상승, 영토분쟁에 휘말린 동아시아인들에게 꿈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는 대단히 중요한 과제다. 평화 건설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상호의존 심화, 제도적 협의체 구성이라는 세 가지 접근을 통해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다.

민주주의 국가들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미국의 외교정책은 오랫동안 ‘팍스 데모크라티아(Pax Democratia·민주정치를 중심으로 한 평화)’를 추구해 왔다. 유럽 국가들도 1945년 이후 민주주의를 지역 통합의 핵심 요소로 삼아 왔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다양한 정치 시스템은 이런 민주적 평화를 적어도 지금은 힘들게 만들고 있다.

또한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평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동아시아 국가 간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커져왔고 지난 수십 년간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려 왔다. 그러나 지난 2, 3년 동안 미중, 중일 간 갈등을 지켜본 사람은 과연 경제 의존 심화가 동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것인지 의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제적 제도를 건설해 그 제도가 추구하는 규범과 규칙으로 국가의 행동을 규제함으로써 평화를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다. 유럽국가 역시 유럽안보협력기구라는 공동의 규범과 규칙을 수용하고 지켰으며, 유럽연합도 사실 국가 간 공동의 규범과 규칙을 강화하기 위한 길고 지속적인 노력의 결실이다.

그런데 유럽과 대조적으로 동아시아는 국가별 규모와 발전 정도, 정치경제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동아시아의 정책결정자들은 이웃 국가의 정치시스템을 민주주의로 바꾸거나 경제적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정책 입안자들은 지역 차원의 제도를 건설하기 위해 활발한 논의를 해왔는데 아세안+3,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등이 그 사례이다. 그러나 이런 제도화의 과정도 핵심국가 간 영향력 경쟁으로 정치화돼 버렸다. 동아시아는 유럽연합의 설계자였던 장 모네나 로베르 쉬망처럼 지역 평화를 위한 비전을 가진 정치적 지도자가 부족한 듯하다.

따라서 동아시아인들은 지역 협의체 문제를 실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지역 전체를 포괄하는 거대 협의체를 만드는 데 힘을 쏟기보다는 작지만 문제 중심의 협의체에 더 집중하는 편이 낫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에서 지역 경제 협력을 향한 첫 성공 사례는 1997∼199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통화 스와프를 위해 만들어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역시 지금껏 중대한 결론은 내지 못했지만 안보문제를 집단적으로 다루기 위한 유일한 메커니즘으로 남아 있다.

일본의 원자력발전소 재앙은 원자력 안전을 위한 또 다른 문제 중심적 지역 협의체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일본의 이웃 국가들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는 충분하지 않다. 5월 도쿄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담은 원자력 안전 협력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모을 필요가 있다.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88기에 이르므로 이런 이니셔티브는 중요하다. 만약 후쿠시마와 비슷한 문제가 다른 원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은 국제 감시 없이 영변의 핵시설을 가동해 왔다. 영변에서 20년간 핵 과학자로 일해 온 탈북자의 부인에 따르면 그곳에서의 안전기준은 위험천만할 정도로 느슨하다.

덜 거창하고 규모가 작지만 기능에 중심을 둔 협의체 설립은 동아시아 평화 건설의 동력이 될 것이다. 로마 역시 하루아침에 건설되지 않았다.

ⓒProject Syndicate

윤영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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