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성년식 의식은 고대 삼한시대부터 있어 왔다. 유교가 들어오면서 남자는 20세, 여자는 15세가 되면 좋은 날을 택하여 음식과 술을 장만하고 덕망 있는 어른을 비롯해 온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관례(남자 의식)와 계례(여자 의식)를 치렀다. 초가례(평상복), 재가례(외출복), 삼가례(관복)를 차례대로 입고, 진중하게 진행되는 성년식은 체계적이고 손이 많이 갔다. 그만큼 우리 조상은 성인이 된다는 것을 매우 의미 있게 여기라는 의미에서 예와 도를 다해 성년식을 준비해 왔다.
성년이 되면 바로 가정을 꾸려야 하는 조선시대와 달리 지금의 성년식은 장미와 향수, 그리고 술로 일컬어지는 매우 가볍고 기쁘기만 한 축제로 바뀌었다. 결혼 연령이 높아지고, 사회에 발을 내디디기까지 여전히 학생이라는 틀에 머무르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책임보다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대한민국 성년의 자화상이다. 이러한 무책임한 자유는 성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생 10명 가운데 9명은 혼전 성관계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점차 성에 개방적이고 관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들어 여학생들의 성의식 개방은 더욱 가속화돼 성년의 날 체험행사 참가자를 대상으로 작성한 통계에 따르면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의 비율이 지난해에는 30%에 이르렀다.
오랜 시간 전통적인 유교 환경 아래 성에 억압받던 한국 젊은이들이 성에 더 당당해지고, 성과 마주하는 일은 반갑다. 문제는 성에 대한 개방은 이미 선진국 수준인 반면 올바른 성교육과 피임에 대한 인식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피임은 지나치게 남성 의존적인 경향이 강해 피임 실패 확률이 높게는 15% 정도인 콘돔 사용이 주를 이룬다. 피임효과가 크고 안전한, 먹는 피임약 복용률은 2.5%에 그친다.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등 피임약 복용률이 40% 이상인 국가와 비교할 때 2.5%라는 수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피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위험부담이 높은 사후피임약을 먹는 연령대도 20대가 67%로 가장 많으며, 응답자의 80%는 미혼여성이다.
그나마 이렇게라도 피임을 하면 다행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5년 신생아의 78%에 이르는 태아가 인공임신중절로 희생됐는데, 이 중 미혼의 비율이 42%에 육박했다. 그리고 임신중절 시술을 받은 여성의 대부분은 그동안 별다른 피임을 하지 않았고, 자연피임법에만 의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아무런 피임을 하지 않는다는 비율도 13%나 됐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해 올바른 피임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데도 많은 여성이 산부인과 방문을 꺼리는 것도 문제다. 젊은 혈기와 피임에 대한 무지가 만나 불필요한 태아의 희생으로 이어진 셈이다.
16일은 성년의 날이다. 성년이라 함은 성에 대해 자유로운 ‘성(性)년’이 아닌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나이라는 뜻의 ‘성(成)년’을 말한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가 규정한 근대적 자유는 방종이 난무한 자유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책임과 동의어다. 인간의 자유란 근본적으로 책임에 근거한 자기관리에 있는 것이지 동물과 같은 무의지적 방종에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의 자유에 책임을 지고, 소중한 생명에 책임을 진다는 마음으로 올바른 피임 아래 성에 대한 ‘근대적 자유’를 누리는 성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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