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여당, 숙제 당당하게 풀고 국민 심판 받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유럽 순방에서 어제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은 복잡다단한 국정 과제들을 마주하게 됐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백지화로 영남권 민심이 요동치더니 이번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의 진주 일괄 이전 결정으로 호남권 민심이 들끓고 있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도 충청권과 대구 광주를 동시에 만족시킬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야당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도 간단치 않은 숙제다. 정치권의 이해충돌과 내부 반발이 심한 사법개혁 및 국방개혁도 마냥 미뤄둘 수 없다. 이런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에 따라 이 정부의 성패와 국가 장래, 그리고 민생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심 등 돌리게 한 黨靑의 ‘기회주의적 정치’

이 정부는 1년 10개월가량 임기를 남겨두고 있지만 만약 내년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與小野大)가 된다면 사실상 정권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숙제들을 국익(國益), 즉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당당하게 풀고 선거를 통해 심판을 받아야 한다. 책임감이 분명한 정권임을 보여줘야 국민의 재신임도 받을 수 있다. 국익을 기준으로 결단을 내리면 지역주의나 집단이기주의에 따른 반발이 있다손 치더라도 합리적인 국민의 묵시적 동의를 받아낼 수 있다. 뚜렷한 잣대도 없이 사안마다 풍향을 달리하는 여론에 우왕좌왕 끌려다니다 보면 좋은 평가를 받기도 어렵고 국가 장래를 그르치는 구렁에 빠지기 십상이다.

국정 과제는 아무리 골치가 아파도 마냥 뭉개고 미룬다고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래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저래도 두들겨 맞을 일이라면 국익이라는 원칙에 입각해 최대한 객관적인 답안을 내 충정(衷情)으로 국민을 설득하고 평가를 받는 편이 낫다.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일부 세력을 향해 국익을 놓고 따지는 단호함도 없으면 오히려 국민으로부터 경멸당한다. 한나라당이 국회 의석을 3분의 2 가까이 갖고 있으면서도 지리멸렬하고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비치니 국민이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이다.

한미 FTA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해 한국의 경제영토를 넓히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여야 합의가 안 되면 한미 FTA를 다음(19대) 총선 때 공약으로 심판받겠다”는 황우여 원내대표의 말은 18대 총선 민의를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다. 시끄러운 일은 피하고 보겠다는 생각의 발로가 아니길 바란다.

국회 의석이 전체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야당에 발목 잡혀 꼼짝 못하는 여당이라면 내년 총선에서 다시 과반의 안정 의석을 달라고 국민한테 호소할 염치도 없다. 그렇게 무능한 당에 과반 의석이 왜 필요한가.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물러나면서 북한인권법 입법을 저지한 것을 자신의 업적처럼 자랑했다. 종북(從北)주의자의 가벼운 언설이지만 더 큰 책임은 국민이 다수 의석을 만들어줬음에도 박지원류의 정치에 끌려다닌 한나라당에 있음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내 일부 소장파는 물리력을 동원한 국회 운영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다수 의석의 여당으로서 직무를 포기하는 일종의 정치 도피행위다. 일부 야당 의원은 정부여당의 정책과 입법 추진을 무조건 반대하며 쇠망치와 공중부양(浮揚)으로 덤비는데 ‘물리력은 절대 쓰지 않겠다’고 하면 집에 가서 편히 쉴 일이지, 무엇하러 힘들게 정치를 하는가. 한 번 당선되면 4년은 온갖 특권을 누릴 수 있으니 기를 쓰고 재선 삼선 하려는 심사인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의식은 찾아볼 수 없는 온상 속 웰빙 여당 의원들을 어떤 국민이 믿고 의지하겠는가.

어떤 政派도 ‘나만 살겠다’면 다 죽는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의원들도 차기 정권을 떼어 놓은 당상인 줄로 안다면 착각이다. 부자 몸조심 하듯이 몸을 사리며 정권을 잡을 수 있을 만큼 시절이 한가롭지 않다. 한나라당을 향한 민심이 너무 많이 식었다.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의 성공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나서지 않는다는 식으로 여러 번 말했지만, 지난 3년여 동안 박 전 대표와 친박계가 이 정부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진심으로 믿을 사람은 별로 없다. 박 전 대표와 친박계의 위력을 여러 번 과시한 것으로 자족하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박 전 대표가 다음에 대한민국의 지도자가 돼야 할 이유를 보여주지 못하면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다. 자신들이 몸담고 있는 여당이 성공하도록 힘을 보태지 않는 정파(政派)가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행복을 지켜주겠다고 한다면 다수 국민이 선뜻 믿을 수 있겠는가. 어떤 정파도 “나만 살겠다”고 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정치의 역설(逆說)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난제들을 앞에 놓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면서 시간을 보낸다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지금부터라도 숙제를 당당하게 풀고 대응해야 국민이 이 정권을 선택한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그것만이 이 정권이 사는 길이다. 아무리 소통이니, 중도니, 친서민이니, 공정사회니 하는 말을 앞세워 봐야 실천이 따라주지 않으면 눈속임의 분칠에 불과하다는 것을 국민이 먼저 안다. 글로벌 경제위기 탈출의 모범국가라느니,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국이 됐다느니 하는 자랑만 하다가 임기를 마칠 생각인가. 바짝 분발해서 국민의 피부에 와닿는 실적을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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