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인 한나라당이 외부 보수세력을 규합하기 위해 당헌을 개정하고 당명도 개정할 모양이다. 정치학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곤혹스럽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복잡하게 변해온 정당의 이름을 순서대로 알려주기 힘들어서만이 아니다. 왜 당의 이름을 바꾸어야 했는지 설명하기 궁색해서다.
정치선진국 정당명 수백년 고수
일반적으로 당명은 특정 정당이 지향하는 이념적 성향의 표현이다. 그래서 정치선진국의 대표적 정당들은 온갖 질곡에도 고유한 명칭을 고수해왔다. 토리당(Tory Party)에 기원하고 있는 영국 보수당은 19세기 중반 이래 현재의 이름을 쓰고 있다. 그에 비해 역사가 짧은 노동당도 100년 넘게 현재의 당명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민주당은 1830년대부터 현재의 당명을 사용하고 있다. 1860년 노예제 폐지를 선언한 공화당의 열풍에 눌린 이래 1932년 뉴딜정책을 표방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집권할 때까지 인기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당명을 바꾸지 않았다. 공화당도 미국사회의 보수화와 베트남전 실패를 계기로 1969년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까지 질곡이 있었으나 당명을 개명하지 않았다.
물론 선진국의 정당이라고 해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국 자유민주당은 자유당과 사회민주당이 연합해 1980년대에 탄생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처럼 정당이 빈번하게 이합집산을 하고 명칭을 바꾸는 것은 정치적 후진성의 일면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여러 가지 그럴듯한 변명을 늘어놓지만 실상은 특정 인물 또는 계파의 정치적 지분에 대한 자취를 남겨놓으려는 욕심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 기존 정당의 명칭 아래로 들어가자니 자신이 가지고 들어가는 지분의 자취가 사라질 것이 염려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보장할 새로운 제3의 당명이 필요하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정치적 제도다. 시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부와 연결해 준다. 당연히 그들의 주인은 시민이다. 정당들은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정치상품을 만들어 선거에서 시민의 선택을 받는다. 우리의 현실은 이러한 원론과 정반대이다. 생산자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기호에 맞게 정당을 디자인하고 시민에게 구매를 강요한다. 소비자의 기호는 뒷전이다. 정책 내용의 진정한 변화는 없고 그럴듯한 새 이름으로 치장한 정당을 시민은 속는 셈치고 다시 구매한다. 우리 정치가 매력을 잃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한나라당이 변화를 시도할 요량이라면 무엇보다도 정책의 내용을 가지고 고민해야 한다. 물론 정당의 1차적 목표는 정권의 획득이다. 그러나 이 목표가 외향만 바꾼다고 달성되는 건 아니다. 시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보수적 시각에서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궁리해서 유권자에게 설명해야 한다.
진정 변화 원하면 정책고민 먼저
우리가 당면한 핵심 문제 중의 하나는 지역 간, 계층 간, 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되는 현실이다. 과거 권위주의적 발전국가하에서 형성된 불균형 성장의 구조는 1998년 이후 실행된 경제회복프로그램을 통해서도 해소되지 못했다. 복지의 확산을 희구하는 시민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증폭돼 간다. 복지는 계층 간 타협의 산물이다. 기존 지역중심 정치를 넘어서야 해답이 나오는 어려운 주제다. 합당을 하고 당명을 바꾸고 경선을 통한 공천으로 내년 선거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면한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정권으로 넘어갈 것이다.
대표 보수정당인 한나라당이 이념적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정치엘리트들이 관료나 시민엘리트들을 압도하는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선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념과 정책을 설득력 있게 엮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선진국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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