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하태원]美, 한미동맹 ‘格’에 맞는 대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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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6일 03시 00분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직업상 당연한 일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한덕수 주미대사만큼 미국 행정부 당국자와 상하 의원을 많이 만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의회비준 성사가 당면 목표인 한 대사는 요즘 문지방이 닳도록 미 의회 의사당을 찾는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등 북한 문제가 이슈였을 때는 제프리 베이더 전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 성 김 북핵특사와 ‘4인 모임’이라는 정례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한 대사라고 해서 미국 주요 정치인들을 만나고 싶을 때마다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1월 하원의장 자리에 오른 존 베이너를 만나기까지에는 무려 5개월이 걸렸다. 3일로 예정됐던 7개 연방하원의원 면담 일정은 ‘오사마 빈라덴 사살’로 마지막 순간에 줄줄이 취소됐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4월 말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캠벨 차관보와 약속한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다면서 “바람을 맞았다”고 표현했다.

3년 반 동안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기자도 행정부 당국자나 의회 의원들과 인터뷰할 기회를 만들려 애썼다. 국무부의 캠벨 차관보, 로버트 아인혼 대북제재조정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 로버트 킹 북한인권특사, 필립 크롤리 전 공보담당 차관, 국방부의 마이클 시퍼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부차관보, 백악관 NSC 마이크 해머 전 대변인 등은 하나같이 한미동맹의 소중함과 한국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인터뷰 당사자를 섭외하는 일은 쉽게 이뤄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과장하자면 한 100번 만나자고 해야 한두 번 성사되는 정도일까. 어렵사리 이뤄졌다 해도 황당한 일이 생긴다. 한국으로 치면 국장급인 국방부 제프 모렐 대변인 겸 부차관보는 인터뷰 도중 책상에 다리를 떡 하니 올려놓는 것도 모자라 상관인 로버트 게이츠 장관의 호출을 받고 10분 이상 자리를 비워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크게 향상됐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당국자와 한국의 당국자 간에 ‘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차관보의 공식 카운터파트라는 것은 백번 양보해 받아들인다고 해도 국무부 부장관이나 차관보 급이 한국 대통령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소장급 한반도 전문가들 역시 방한 중에 청와대나 외교부, 통일부의 고위 공직자들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만났다며 자랑을 늘어놓는 경우를 자주 봤다.

요즘 미국 외교가에서 차기 주한 미국대사 인선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무엇보다 달라진 한국 위상이나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반영된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곧 임기가 끝나는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한국이름(심은경)을 가질 정도로 한국에 애정이 깊지만 백악관 핫라인을 통해 오바마 대통령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각료급 정치인이 갖는 정치적 무게감도 없고 오바마 행정부를 탄생시킨 국정철학을 공유할 경험도 갖지 못한 그는 미국 내에서는 150여 개국 대사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한미동맹을 가리켜 ‘린치핀(수레의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에 꽂는 핀)’이라고 했다. 그처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동맹국에 단 한 번도 다른 나라 대사를 경험하지 않은 ‘초보’ 대사를 두 번 연속 보내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을 가져본다.

하태원 워싱턴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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