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그룹 사건으로 폭발한 전관예우(前官禮遇) 대란이 위태롭다. “금융감독원이 아니라 금융강도원”이란 말까지 나온 부산 지역 민심에 일촉즉발의 기세가 느껴진다. 한때 유행했던 ‘민나 도로보데스(전부 도둑놈이야)’라는 말이 생각난다.
전관예우는 법조계의 잘못된 관행과 퇴직 공무원의 유관기업 재취업이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법조 전관예우는 1998년과 1999년 법조비리 사건 때 핫이슈가 됐지만 어물쩍 넘어갔다. 당시 여당은 당내에 사법개혁 특별기구까지 설치했지만 용두사미로 끝났다. 최근 개정된 판검사 전관예우 금지법도 형사처벌 규정이 없고, 사건 수임 제한 규정도 구멍이 뚫려 실효성이 의심된다.
판검사 출신 변호사에 대한 전관예우보다 더 심각한 것이 대형 로펌의 막강 파워다. 판검사들이 퇴임 후를 생각해서 대형 로펌이 맡은 사건의 수사와 재판에서 로펌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변호사 전관예우보다 훨씬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이에 대한 대책이 실효성도 없는 법관윤리가 고작이니 뭘 기대하겠나.
법조 전관예우는 외국에선 유례를 찾기 힘든 ‘공정사회의 적’이다. 전관예우가 있는 한 사법정의도, 공정사회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은 변호사 경력자 중에서 판검사를 임명해 전관예우 문제가 발생하기 어렵다. 대법관은 종신직이니 5년 동안 60억 원을 벌 수 있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도 없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때 실직한 사무라이들에게 재판을 맡겨 명예를 생명보다 중시하는 문화가 사법부 전통이 돼 판사들이 엄격한 윤리의식을 갖게 됐다.(소노베 이쓰오 전 일본 최고재판소 판사)
퇴직 공무원이 유관기관이나 로펌 및 공기업에 재취업하는 전관예우는 외국에도 흔하다. 미국에선 1961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군산복합체의 위험을 경고한 것을 계기로 미국식 전관예우인 ‘회전문(revolving door) 관행’이 문제돼 연방공무원 로비법이 제정됐다. 일본에는 조기 퇴직 공무원을 민간기업에 취업시켜 주는 일본판 낙하산 인사인 ‘아마쿠다리(天下り)’ 관행이 있다. 2009년 집권한 민주당 정권이 취업 알선은 금지했지만 잘 안 되고 있다.
40대 후반이나 50대 초중반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공직을 떠난 전관(前官)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곳에 무조건 재취업해선 안 된다면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9년 인사청문회 때 로펌 고문 경력을 문제 삼자 이렇게 항변했다. “우리는 (공직을) 그만두면 모래바닥에 코 박고 죽어야 합니까. 우리가 공직자 시절 월급을 많이 받았습니까. 김앤장도 못 가게 하면 공직자는 어쩌란 말입니까?” 공직자의 로펌 재취업이 문제라면 법으로 금지해야겠지만 전관예우 관행을 깨기 위한 14건의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을 깔아뭉갠 국회는 비판할 자격도 없다.
비리가 드러난 전직 금감원 간부들을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재취업 공직자 모두를 비난하는 건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다. 재취업한 곳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를 가려야 한다. 재취업 공직자와 접촉한 공무원들이 접촉 내용을 의무적으로 신고토록 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고액 연봉을 받으며 공직 경험을 개인의 치부를 위해 사용한 전관예우 공직자라면 고위직 복귀는 사양하는 게 좋다. 공정사회를 위해 ‘돈 명예 권력’ 3가지를 모두 탐내는 ‘3탐(貪)’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3탐 금지 불문율’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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