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최경주의 심리학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7일 03시 00분


승부는 서든데스 연장전 첫 홀 퍼트 대결에서 결판이 났다. 서든데스는 하나의 홀에서 이기면 바로 승부가 결정 나는 방식이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최경주는 12m 내리막 퍼트를 남겨두었다. 데이비드 톰스는 홀컵에서 5.5m 거리에 공을 붙였다. 톰스는 첫 퍼트를 실패하고 어이없게도 두 번째 1.1m짜리 퍼트도 놓쳐 보기를 범했다. 최경주는 스리 퍼트를 저지르기 쉬운 12m 롱 퍼트를 투 퍼트에 막아 생애 최대의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번 경기가 열린 플로리다 주 잭슨빌 폰테베드라비치 소그래스 골프장은 최 선수에게는 의미가 남다른 곳이다. 1999년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이 골프장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집을 얻어 살아 몇 차례 연습 라운드를 했던 곳이다. 그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승리한 후 인터뷰에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내 실력으로는 이 코스에서 언더파를 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번 승리가 더욱 기적 같다”고 말했다.

▷골프에서 ‘퍼트는 사이콜로지(psychology·심리학)’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안정되고 자신감이 있어야 홀컵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이 골프장이 최경주가 미국에 온 후 가끔 연습을 해 눈에 익은 골프장이라는 점도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최 선수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는 승리한 후 “오늘 하루 종일 정말로 기도를 열심히 했다. 이 경기를 이길 수 있게 해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일성을 터뜨렸다. 신앙심도 퍼트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이번 우승을 잡기 전에 세 경기 연속 톱 10에 들어가 상승세를 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2008년 1월 소니오픈에서 우승한 이래 3년 4개월 만에 움켜쥔 1승이다.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은 4대 메이저대회엔 포함되지 않지만 상금이 메이저 대회보다 적지 않고 참가 선수도 미국프로골프(PGA) 선두 랭킹과 최근 PGA 우승자만 참가하는 대회다. 최 선수의 우승은 불리한 여건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탱크처럼 목표를 향해 질주하는 뚝심의 결과다. PGA 7승의 경력을 배경으로 편하게 지낼 수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기량을 갈고닦았다. 이번 승리는 기적이 아니라 땀과 눈물의 결정체임을 우리는 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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