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産銀의 우리금융 인수 추진이 안고 있는 모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18일 03시 00분


정부가 우리금융지주 민영화 요건을 완화해 매각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 금융위원회는 금융지주회사가 다른 지주사를 인수할 때 지분을 95% 이상 매입하도록 한 금융지주회사법 시행령을 고쳐 우리금융의 경우에는 50% 이상으로 낮추기로 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는 최저입찰 규모를 4%에서 30%로 높여 소규모 지분 투자는 막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금융 인수 경쟁에서 사실상 특혜를 받는 산은금융이 가장 유리해진다. KB, 신한, 하나금융 등은 인수에 참여할 의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사전에 교통정리라도 있었던 것인가. 강만수 산은금융 회장은 우리금융을 인수하면 대형화를 통해 ‘메가뱅크’로 키울 수 있고 산은의 수신 기반 취약성이 해소돼 훗날 산은 민영화도 쉬워질 것이라고 말해왔다. 강 회장의 지론인 메가뱅크론(論)과 정부의 방침을 묶어 보면 정부가 우리금융을 산은금융에 넘겨주려는 것으로 금융계는 보고 있다.

정부 지분이 100%인 산은금융에 인수되는 우리금융이 민영화됐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상 국유화돼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 통제가 강화될 수 있다. 세계가 이런 한국의 메가뱅크를 선뜻 신뢰하고, 세계적 메가뱅크로 대접해줄 것 같지 않다. 정부가 우리금융을 매각하고 받는 돈이 정부가 낸 빚이라면 우리금융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회수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산은금융 측은 우리금융 인수를 위해 외부 자금을 쓰고 기업공개를 추진하면 산은금융의 정부 지분이 60%까지 내려간다고 본다. 하지만 산은금융의 민영화 역시 표류하고 있는 과정을 보면 낙관론의 근거가 약하다.

메가뱅크 필요 여부도 되짚어 봐야 한다. 강 회장 등은 대형 프로젝트에 금융을 제공할 초대형 은행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가 2009년 186억 달러짜리 아랍에미리트 원전을 수주할 때 국내에 세계적인 대형은행이 없어 외국계 은행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는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우리금융과 산은금융이 합쳐지면 총자산이 505조 원으로 세계 54위 수준의 은행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의 메가뱅크처럼 덩치만 크다고 경쟁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국유은행에 활력을 기대할 수 없고 금융위기 때 리스크만 커진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 회장과 이팔성 우리금융 회장 모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다.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둘러싸고 두 금융 실세의 세력다툼 양상이 벌어진다면 민영화 자체가 왜곡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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