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 때마다 제시되는 국책사업 공약의 후유증으로 지역 분열이 격화하고 국론이 찢기는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약한 행정수도 이전과 그 변형인 행정도시(세종시) 건설은 노무현 이명박 두 정권에 걸쳐 극심한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 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4대강 사업과 동남권 신공항 건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은 우여곡절 끝에 결론이 났지만 반발과 갈등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국책사업 공약이 초래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막대하다.
일각에서는 국책사업을 유치하는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비용을 분담하게 하거나 기피 시설을 함께 가져가도록 하자는 해법(解法)을 제시한다. 국책사업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정부 지자체 전문가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갈등조정위원회를 구성해 국책사업을 조정하거나, 독립적인 상설 기관을 만들어 국책사업을 선정하자는 견해도 있다. 나름대로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는 대선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국책사업 공약을 남발하는 관행 자체를 뜯어고칠 수는 없다.
공약의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을 통해 공약 남발을 견제하고 유권자에게 판단의 근거를 제시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 역시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 대부분의 공약이 선거에 임박해 나오므로 검증에 필요한 시간이 부족하고, 검증 자체에 대한 국민의 신뢰와 관심도 높지 않은 편이다. 결국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라 찬반 논란을 빚다가 선거가 끝나고 나서 뒷수습에 나서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대선 공약은 지역보다는 나라 전체의 이익을 고려해 결정해야 마땅하다. 즉흥적으로 공약을 내놓을 것이 아니라 국가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가려 신중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막상 선거에 들어서면 대선 캠프마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이성적 판단을 상실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비판했던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에서 세종시 공약을 그대로 답습한 것은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선거에 이기겠다는 강박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책사업 공약 장사’를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 합의를 전제로 정치권이 큰 틀의 변화를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 지역과 관련된 대형 국책사업은 아예 대선 공약으로 내놓지 못하게 금지하는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국책사업은 대통령이 임기 중에 면밀한 사업성 검토와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래야 후유증도 적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