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이하 구조구급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구급의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늦게나마 병원 전 단계 구급활동을 위한 기본 법령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다행스럽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구급차로 이송되는 심(心)정지 환자는 약 2만 명(2008년 기준)인데 생존율은 2.5%에 불과하다. 매일 55명씩 쓰러져 구급차로 이송되고 이 중 53명이 사망하는 셈이다. 한국의 생존율이 일본(12∼18%)이나 미국 시애틀(25% 안팎)보다 크게 낮다. 이처럼 생존율이 낮은 원인 중 하나는 구급차가 너무 늦게 달려가기 때문이다.
심정지 환자는 대개 4분 이내에 응급처치가 시작돼야 한다. 그러나 구급차는 평균 7, 8분 후 현장에 도착한다. 1분이 늦어지면 사망률은 대략 7∼10% 높아진다. 이론적으로는 10분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하면 모든 환자는 살 수 없다. 구급차 수요는 매년 10%씩 증가해 지난해 구급차 1390대로 140만 명을 이송했다. 교통량이 늘고 골목마다 자동차가 넘치니 구급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경광등을 켜고 비상벨을 울려도 차량들이 움직이기 어렵다. 그래서 매년 40초씩 구급차가 더 늦게 도착하게 된다. 이론적으로 구급차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매년 약 7%의 심정지 환자가 더 사망한다.
언론에 비친 구조구급법은 술에 취하거나 긴급하지 않은 이송을 사절하여 반응시간 40초를 줄이려는 간절한 시도로 보인다. 그러나 현장 상황을 천리안처럼 알기 어려운 119콜센터에서 구급대를 보내지 않고 이송을 거절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단순 취객이나 경증 환자 이송을 거절하려면 결국 현장에 출동해야 하고, 이송 거절을 위한 설득 때문에 실랑이가 많아질 수도 있다. 여기서 구급대원은 취객들의 억지 탓에 또 절망할지도 모른다. 행여 구급대원이 잘못 판단하면 그 환자는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119에 전화를 건 모든 사람에게 5분 내 구급차가 도착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구급차 출동체계에 대한 집착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심정지와 심근경색 같은 중증환자(전체의 10∼20%)를 프로토콜을 이용하여 콜센터에서 구분하고, 이들에게 빠른 전문구급차가 출동하도록 한다. 이 구급차에는 전문 인력도 충분히 탑승한다. 나머지 80∼90%의 경증환자에게는 15∼20분 뒤 도착하도록 하고 국민에게 양해를 구한다. 구급대원은 한 명이면 족하다. 이러한 다층 구급차 출동 서비스는 구급차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게 한다.
이런 시스템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가 법령에 포함돼야 한다. 첫째, 119종합상황실에 구급 경험이 많은 전문인력을 배치해 중증도를 구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 콜센터가 하고 있는 방법이다. 둘째, 중증응급환자 이송과 치료에 대한 의료지도를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방방재청에 의료지도과를 설치하고 전국 소방서에는 응급의료 전문의사를 겸직 위촉하여 구조구급활동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현재 수많은 환자가 구급차로 이송되고 치료되지만 책임 있는 구급지도의사는 한 명도 없다. 구급대의 의료행위에 대한 전문성 강화 요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민의 잘못된 습관을 고치면 심장마비 환자들에게 구급차가 빨리 도달할 것 같지만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정책이다. 시스템을 현대화, 효율화, 전문화하는 것 이전에 국민의 잘못된 문화가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행정적 편의주의다. 고통스럽게 묵묵히 일하는 현장의 구급대원을 생각해서라도 좀 더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체계를 이참에 도입하기를 기대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