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평환]軍 의료체계 개선, 일선부대 군의관 확충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0일 03시 00분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최근 잇따라 발생한 육군훈련소 내 훈련병 사망사고와 관련하여 군 의료체계 개선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이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정치권과 군이 추진하려는 군 의료체계 개선 방안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 이번 사건으로 정치권과 군이 추진하려는 의료체계 개선의 핵심은 국방의학원을 설립하여 우수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동안 예산 문제와 의사협회의 반대에 부딪혀 입법화되지 못하고 국회국방위원회 법률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인 묵은 법안을 여야 국회의원 만장일치로 입법화하여 국방의학원을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이는 군이 우수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하지 못해 병사들이 제때 올바른 진료를 받지 못하고 의식불명이나 사망사고가 발생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정책 대안이다. 이는 병사들의 질병이나 사고와 관련해 발생하는 사망사고의 근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다분히 행정 편의적이고 한편으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낭비적인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발생한 군내 사고 및 질병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경우 1, 2차 진료기관에 해당하는 대대급과 연대급 이하 부대에서 군의관이나 후송장비의 부실로 초동조치를 잘못해 일어난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유행성출혈열이나 말라리아에 걸린 장병에게 해열제나 감기약을 처방하다 치료시기를 놓쳐 사망하게 하거나, 감기환자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폐렴으로 악화되고 이를 치료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이다. 전술훈련이나 행군, 뜀걸음 중에 장출혈 또는 탈수증세를 보이는 장병을 제때 진료하거나 후송하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사망사고는 초동조치 미흡때문

3, 4차 진료기관인 후송병원이나 통합병원에 우수 군의관이 없거나 장비가 부실하여 일어난 사망사고는 거의 없다. 이미 병사들도 필요 시 민간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고 건강보험 혜택도 받게 조치했다. 응급환자나 군의 진료수준을 넘어서는 경우 우수 민간병원에 후송하여 치료하면 된다.

문제는 군의관이나 해당 부대 지휘관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제때 민간병원에 위탁치료를 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연대장 시절부터 매일 오전 상황보고 시간에 환자 현황과 치료 실태를 보고받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게 했다. 군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장병들을 민간병원에 위탁치료하거나 군 후송병원 관계자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적극 치료하게 하여 죽어가던 장병을 살려낸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민간병원 위탁치료를 하면 예산이 많이 들어 안 된다고 하는데 이는 정말 잘못된 발상이다.

국방의학원을 설립하여 우수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하더라도 어차피 연대급과 대대급 부대에 우수 군의관을 충분히 배치할 수 없다. 그야말로 예산만 낭비하고 문제 해결이 안 된다고 본다.

군 의료체계 개혁 방향은 첫째, 공익근무 군의관을 줄이고 단기복무 현역 군의관을 더 확보하여 대대급 이하 부대에 군의관을 충분히 보충해 주어야 한다. 격지나 오지 독립중대급에도 군의관을 배치하고 독립소대급에 의무병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되고 있는 육군훈련소에는 교육대별로 군의관을 배치해야 한다. 2000명 내지 3000명의 훈련병을 한 명의 군의관이 담당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사단급 의무대에는 특수촬영장비와 응급 후송장비를 대폭 지원해 주어야 한다.

둘째, 사단장 이하 중·소대장들은 매일 장병 환자 현황과 치료 실태를 보고받고 적절한 치료지도를 하는 것을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군 후송병원과 장기복무 군의관을 과감히 줄이고 그 예산으로 민간 위탁 진료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군 의료 관계자들은 미군의 예를 들거나 전시 대비 문제와 예산 타령을 한다. 미군의 경우 전 세계 어디든지 파견하여 싸우는 군대이기 때문에, 또 그만한 국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지원체계를 패키지화하고 자체적으로 최고 수준의 군 의료체계를 갖추고 있다.

장기군의관 대신 민간위탁 확대를

그러나 우리는 전시든 평시든 이 땅에서 싸우는 군이다. 국력도 미국에 비해서는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민간 의료체계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우수 장기복무 군의관을 확보하려고 해도 다른 군인과의 형평성 때문에 민간 수준의 보수를 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일부 우수 군의관을 확보하더라도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대대급 이하 부대에 충분히 배치할 수도 없다. 전시에는 민간병원을 동원해야 한다. 평시부터 군민합동의료체계를 발전시켜 갖추는 것이 전시 대비에 더 효율적이다.

군 의료체계의 실질적인 개선으로 앞으로는 금쪽같은 우리 자식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아서는 안 된다. 군 의료체계의 효율적인 개선을 바란다.

허평환 전 기무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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