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경석]‘모피 패션쇼’ 서울시의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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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4일 03시 00분


강경석 사회부 기자
강경석 사회부 기자
불을 끄려고 물을 부었으나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최근 ‘모피 패션쇼’로 논란이 됐던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펜디의 ‘2011 가을겨울 패션쇼’가 다음 달 2일 일부 모피 제품을 포함해 예정대로 서울 반포대교 부근 ‘세빛 둥둥섬’에서 열리게 됐다. 서울시가 며칠 전 “모피 관련 패션쇼는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모피 논란을 잠재우려다 되레 자신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번복한 꼴이 됐다.

애초 서울시가 패션쇼 아이템에서 모피를 제외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 쇼가 세빛 둥둥섬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규모 행사인 만큼 최대한 잡음 없이 치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쇼를 개최한다는 발표 이후 반대 여론이 일자 전격적으로 ‘모피 행사는 무조건 취소’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기대했던 ‘박수’ 대신 비판이 나왔다. “국제적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취소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난처할 수밖에 없었다. 공언한 대로 모피를 빼자니 쇼 자체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원래대로 진행하면 허언(虛言)을 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23일 “모피와 관련된 부분은 최대한 축소하고 다양한 컬렉션을 선보이기로 협의했다”고 한 발짝 물러섰다. 이날 펜디의 공식 발표 외에 서울시는 어떤 공식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당시 ‘모피 패션쇼 전면 취소’를 대변인 트위터를 통해 알린 것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서울시가 펜디라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펜디는 애초 가죽과 모피로 시작한 브랜드다. 모피에 대한 논란을 예상했다면 사전에 충분히 논의를 했어야 했다. 또 의상 일부분에 모피가 포함될 수도 있어 단순하게 ‘모피는 전부 제외’라고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미 실무자끼리 협의가 끝나고 패션쇼를 2주 남겨 놓고 내린 결정이었기에 국내외 유명인사 1200여 명에게 초청장을 보냈던 펜디 측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쇼가 전면 취소되는 불상사는 면했다. 하지만 이번 쇼로 ‘디자인 서울’이라는 브랜드를 전 세계에 널리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놓친 듯하다. 패션쇼 당일 시가 우려했던 반대 시위도 열릴 것으로 보인다. 박소연 동물사랑실천협회 대표가 “벌써 서울시가 집회 신고를 못하게 방해하고 있지만 어떻게든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공언하는 만큼 서울시가 예상했던 ‘축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강경석 사회부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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