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주의자는 포섭대상이긴 해도 지도자로는 모시지 않는 것이 내 철학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2000년 12월 당시 김중권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김 대표는 김대중 대통령(DJ)이 영입한 영남(경북 울진) 출신이지만 5, 6공(共) 인사로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다는 얘기였다. 영남 인사를 앞세운 DJ식 동진(東進) 정책은 호남 기반 위에 영남 후보 또는 영남 세력을 내세워 정권을 재창출하자는 전략이었다. 김중권 카드도 그 전략의 하나였다.
▷노 전 대통령은 같은 영남 출신이지만 자신이 민주화 세력의 적통(嫡統)인 만큼 경선과 본선 경쟁력이 더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영남 대표성을 획득해야 경선에서 유리한 위치에 올라설 수 있다고 생각한 노 전 대통령은 정치 노선을 바꾼 김 대표의 약점을 정통으로 찌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것은 당 정체성을 내세워 김 대표를 무력화시키고 당내에서 영남 대표성을 획득한 전략이 주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왼팔’이었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21일 민주당 손학규 대표에 대해 “역사의 족보와 줄기는 정통성에 있다. 나무의 가지가 줄기 역할을 하면 그 나무가 자빠진다”고 말했다. 손 대표를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 출신은 민주당의 가지에 불과하다는 뜻일 터다. 손 대표 측은 “의례적인 발언 아니냐”라고 했으나 신경이 쓰이는 눈치다. 안 지사가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민주당 후보가 되려는 구상을 드러낸 발언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는 3월 손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친노(親盧) 386’이지만 원칙을 강조하는 안 지사와 정치적으로 유연한 이 전 지사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리는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민주노동당과 야권 통합을 시도한 뒤 민주당을 압박하려는 구상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야권 대선후보로 띄우자는 주장에 대해 친노 일각에서는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지만 정치 현실엔 맞지 않다”고 평가한다. 노 전 대통령 2주기를 맞은 친노 진영은 각자 입지에 따라 갈라지는 분화 과정을 밟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