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빚 총액이 800조 원을 넘어섰다. 금융회사 가계대출과 신용카드 외상구매를 합친 가계신용(부채) 잔액은 3월 말 현재 801조 원으로 작년 말보다 6조 원 늘었다. 가계신용 잔액에다 자영업자나 민간 비영리단체의 금융부채, 대부업체의 대출을 보탠 개인부문 금융부채 총액은 작년 말 현재 937조 원으로 1000조 원을 넘본다.
미국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은행산업을 위기로 몰아갈 우려가 있는 요인의 하나로 가계부채 증가를 꼽았다. 개인부문 금융자산이 2176조 원으로 부채의 2.3배라고 하지만 안전판이 되기 어렵다. 금융자산은 주로 부유층과 상위 중산층이 가진 반면 부채는 경기 악화와 금리상승의 직격탄을 맞기 쉬운 서민층과 하위 중산층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가계부채의 약 60%를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90%는 변동금리의 적용을 받는다. 금리가 오르면 차입자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대출 금리가 2%포인트 오르면 가계의 이자부담이 연간 18조 원 늘어날 것으로 추계했다. 가계 빚의 원리금 상환부담을 견디지 못해 파산이 늘어나면 은행 등 금융회사의 부실 위험이 커지고, 내수 소비는 줄어 금융 및 실물경제 전반에 타격이 미친다. 2007년 미국에서 발생해 국제금융시장의 신용경색과 이듬해 글로벌 경제위기를 부른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는 빚의 무서움을 여실히 보여줬다.
정부는 부채의 원리금 상환액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인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올 4월부터 다시 규제하고 있다. 가계부채 급증을 억제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이것만으론 안심할 수 없다. 금융회사들의 무분별한 가계대출 확대나 카드 마케팅 경쟁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빚이 있는 개인과 가정에서도 금리인상에 최대한 대비해야 한다.
국가, 공기업 및 민간기업, 지방자치단체 등의 빚도 크게 늘고 있다. 국가채무는 작년 말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33.5%인 393조 원에 육박했다. 27개 주요 공기업 부채는 272조 원으로 1년 전보다 34조 원 늘었다. 30대 그룹의 부채 총액은 올 4월 현재 1036조 원으로 2008년 말보다 51% 증가했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빚이 많으면 대내외 경제변수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빚에 대한 높은 경각심과 치밀한 대응자세가 긴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