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태평양 도서국(이하 도서국)을 초청해 31일 서울에서 처음으로 외교장관회의를 연다. 올해 이 지역에 부임한 필자는 우리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이번 회의를 반긴다.
도서국은 피지와 파푸아뉴기니 등 12개 유엔 회원국과 2개의 뉴질랜드 자치령을 지칭한다. 흔히 지상낙원 정도로 회자되지만 이들 나라는 경제력이 취약한 작은 섬나라다. 국토 면적은 파푸아뉴기니(46만 km²)를 제외하면 남한의 3분의 2 크기인 6만5000km²에 불과하고 국제정치적인 위상도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영토에 대한 패러다임이 국토 면적에서 배타적경제수역(EEZ)으로 확대되는 추세여서 도서국들이 관할하는 약 1800만 km²의 EEZ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국민의 식탁에 오르는 참치는 거의 대부분이 도서국들의 EEZ에서 잡힌다. 또 남태평양 해저에 부존한 미개발 열수광상(마그마에서 열수가 분출되면서 해저에 침전된 광물자원)에는 구리 아연 니켈 등의 함량이 높고 금과 은도 소량 함유돼 있다. 우리나라는 통가 해역에 이어 피지에서 탐사조건을 협의 중이다. 탐사작업이 순조롭게 진척된다면 이들 나라는 5년 후 자원 보유국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1971년 발족한 태평양도서국포럼(PIF) 회원국들은 자원이 빈약하고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취약하며 만성적 무역 및 재정적자를 겪고 있어 개발원조가 절실하다. 전통적으로 깊은 이해관계를 가진 호주 뉴질랜드 미국 일본 중국 등이 대화 상대국이고,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은 연간 약 9억 달러, 1억6000만 달러, 2억 달러 수준의 무상원조를 제공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중국이 새로운 공여국으로 등장해 중국과 대만 간 수교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중국은 8개국, 대만은 6개국과 수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1년 피지를 시작으로 12개국과 모두 수교(북한은 2개국)했고 도서국들은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친한(親韓) 성향을 보이고 있다. 1995년 PIF 대화 상대국으로 가입했고 2008년부터 한-PIF협력기금에 매년 30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을 통해 약 150만 달러의 무상원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도서국들은 정부의 신아시아외교정책의 혜택이 아직 미치지 못하는 변경 지역에 속해 있었다. 뒤늦은 감이 있으나 우리나라가 이번 회의를 계기로 도서국으로 외교지평을 본격적으로 넓히는 데 의의가 있다. 앞으로 도서국과의 외교장관회의가 정례화되고 대화 수준도 격상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나라의 도서국에 대한 무상원조 비율은 전체의 0.3%에 불과한데 우리나라의 위상에 걸맞게 대폭 증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무역국이지만 이 지역에서는 세계시장을 제패하는 휴대전화와 백색가전 분야에서 삼성과 LG 제품마저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국책기관인 KOTRA가 남태평양 지역에 설치한 무역관도 전무하므로 무역관 개설이 시급하고 절실하다고 본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선양하고 친선을 장기적으로 강화하는 사업인 봉사단 파견도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 KOICA 설립 당시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일본국제협력단(JICA)은 피지를 거점국가로 삼아 정규직원 6명을 파견한 것을 참고해야 한다.
필자가 주재하는 피지에는 PIF 사무국을 비롯해 10여 개 국제기구 사무소와 12개국이 공동 설립한 남태평양대(USP)가 있다. 그리고 도서국 중 유일하게 우리 국적기가 주 3편 취항하고 있다. 피지가 도서국들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있는 만큼 KOTRA와 KOICA 활동의 거점국가로서는 최적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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