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프로축구 승부조작 파문이 일어나자 “우리 스포츠계에 만연한 도덕 불감증이 곪아 터진 것”이라며 한탄했다.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은 “우리가 이런 일들이 비교적 용인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예견됐다. 2008년에 이미 K3리그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고교대회에선 앞서 있던 경기를 일부러 져주는 사건이 일어나 양 팀 감독이 무기한 자격정지됐다. 당시 현장 지도자들은 초중고교에서 상대팀의 형편에 따라 비기거나 져주는 행태가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연이어 벌어졌지만 한국 축구를 책임지는 관계자들은 입으로만 재발 방지를 외쳤을 뿐이다.
프로축구 승부조작설은 지난해 중반부터 공공연하게 흘러 나왔다. 구단 관계자와 감독, 한국프로축구연맹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연맹은 구단에 선수들을 철저히 관리하고 교육시킬 것을 지시했지만 구체적인 조사는 하지 않았다. ‘소문만 있지 증거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검찰 수사에 의해 진실이 드러나게 됐다. 한 축구인은 “지난해 심증이 가는 선수들을 가려 사정기관에 협조를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했으면 이렇게 일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한탄했다.
연맹은 26일 16개 구단 단장 대책회의를 한 뒤 “리그 잠정 중단에 대한 의견도 있었지만 이는 전체 축구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팬들은 지켜지지 못할 재발 방지 약속과 스포츠토토 일시 제외만을 결정한 데 대해 분개하고 있다. 흥분한 팬들은 “언제부터 팬을 생각했느냐” “리그를 중단해도 좋으니 승부조작에 연루된 선수와 관계자를 발본색원해라”는 등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스포츠맨십에서 0-10으로 지고 있어도 끝까지 혼신을 다해 뛰어야 하는 최선 다하기가 가장 중요하다. 팬들은 돈을 받고 일부러 져주는 일탈행위를 하는 선수와 피해 최소화를 위해 안일하게 대처하는 연맹의 모습에서 ‘최선’을 찾아볼 수 없기에 실망하고 있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는 1979∼1980시즌 시대의 영웅 파올로 로시가 승부조작에 연루되자 2년간 자격정지를 시켰고 2006년 챔피언 유벤투스는 우승팀 자격을 박탈하고 2부 리그로 강등시켰다. 해당 구단 책임자와 감독, 선수를 징계하고 리그 중단을 감수하는 필사적인 대책만이 팬들의 떠난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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