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의약품 리베이트, 공정위는 적발하는데 경찰은 “수사 중”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31일 03시 00분


정재락 사회부 기자
정재락 사회부 기자
‘현금이나 상품권 지급, 식사 및 골프 접대, TV 냉장고 무상 제공….’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29일 병·의원에 400억 원대 리베이트를 제공한 국내외 9개 제약사에 약 3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밝힌 리베이트 제공 사례다. 제약사가 병·의원에서 받아야 하는 외상 매출금 잔액을 할인해주거나 의사에게 학술논문 번역을 의뢰하고 통상적인 번역료보다 150배나 많이 지급하는 방법으로 은밀하게 리베이트를 준 경우도 있었다.

공정위의 리베이트 적발 사례를 보면서 ‘경찰은 그동안 뭘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했다. 울산지방경찰청이 지난달 7일부터 ‘의사 리베이트 수수’ 의혹을 수사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경찰은 지금까지도 “수사 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 태도는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말이 꼭 어울릴 듯하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수사계획을 발표했지만 약 두 달이 흐른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경찰은 지난달 7일 국내외 제약사로부터 돈을 받고 특정 약품을 처방한 혐의(뇌물수수 등)로 전현직 공중보건의 3명을 입건했다. 이어 15개 제약사 계좌를 추적해 전국 종합병원과 대학병원 의사 1000여 명에게 리베이트가 건네진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했다. 리베이트 관여 의사 수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당시 경찰은 “공무원 신분인 공중보건의와 국립병원 의사에게는 뇌물수수죄를, 종합병원 전문의에게는 배임수재죄를 적용해 처벌하겠다”는 의지 표명과 함께 영남권을 제외한 지역 의사는 해당 경찰청과 공조수사를 하겠다는 방침도 내놓았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조사 대상 의사들이 학술회의 참석 등을 이유로 소환에 불응하자 e메일 조사나 변호사를 통한 답변서 제출도 허용해 ‘봐주기 수사’ 논란을 자초했다. 수사 상황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치다 한 달여 만에 “울산과 경남 양산지역 의사 62명을 조사했다”는 내용만 공개했다.

수사 경찰관은 30일에도 “의사들이 받은 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현장 확인 등이 필요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말만 했다. 또 “행정 처벌과 사법 처벌은 다르다”며 공정위와는 다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불공정 거래 행위를 심의·의결하는 준(準)사법기관’인 공정위가 적발한 리베이트 사례를 사법기관인 경찰은 두 달 가까이 한 건도 적발하지 못한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부실 수사’라는 지적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병·의원과 제약사 간 리베이트 수수 행위는 사회적 약자인 환자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경찰의 분발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울산에서

정재락 사회부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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