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동원]잊혀진 수인(囚人)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1일 03시 00분


김동원 국제부 차장
김동원 국제부 차장
“감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머리가 하얘집니다. 흰 도화지처럼….”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정착한 지인은 며칠 전 이렇게 말했다. 남쪽으로 온 자신 때문에 북에 남은 가족이 겪을 고초를 생각하면 잠을 자는 것도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얘기다.

억울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있다면 건강한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

‘한 사회의 개념을 세우고 싶다면 감옥에 누가 있는지 가보라’는 미국 철학자이자 교육학자 존 듀이의 말도 그래서 새롭다.

고문, 난민, 인종차별, 여성폭력…. 이 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을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다.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amnesty는 ‘사면’이라는 뜻)’도 그런 단체다. 국제앰네스티가 나흘 전(5월 28일) 50돌을 맞았다. 축하할 일이다.

1960년 영국 변호사 피터 베넨슨은 지하철에서 한 신문기사를 읽고 충격에 휩싸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두 명의 대학생이 ‘자유를 위해’라는 건배사를 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고 훗날 회고했다. 변호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내용으로 언론에 글을 썼다. 뜻밖에도 많은 사람이 격려와 공감을 건넸다. 이를 계기로 국제앰네스티라는 인권단체가 세상에 나왔다.

당시 그가 기고했던 글의 제목이 ‘잊혀진 수인(囚人)들(The Forgotten Prisoners)’이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런 배경을 가졌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갇혀 있다. 기자가 ‘prisoner’를 굳이 ‘수인’이라고 풀어 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국제앰네스티는 지구상의 이런 죄인 아닌 죄인들의 인권보호에 기여한 공로로 1977년 노벨 평화상까지 받았다. 한국과의 인연도 깊다. 한국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의 친근한 벗 가운데 하나가 이 단체라는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얼마 전 연례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해 “인권의 관점은 사라지고 안보 논리로 인권이 억압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각 여러 시각에서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국제 인권단체들도 특정 국가의 인권 유린에는 상대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바로 북한이다.

어찌된 일인지 국제 인권단체들이 북한 인권을 겨냥해 심도 있게 문제를 제기한 사례는 그다지 많지 않다. 주민들의 인권 유린이나 수용소 실태는 인권단체가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한 사안이다. 그런데도 관심의 깊이와 강도는 퍽 아쉽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시민단체들도 한국의 민주화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 하지만 요즘 시민단체 중엔 따가운 눈총을 받는 곳이 꽤 있다. 시민단체 본연의 역할은 제쳐놓고 이른바 ‘돈이 되는 이슈’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지적도 받는다.

국제 인권단체의 순기능이나 그간의 공적을 과소평가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들의 인권을 지금보다 더 향상시키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벼랑 끝에 서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는 것도 국제 인권단체가 관심을 더 가져야 할 사안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인권을 문제 삼는 측이 북한의 실상을 10%라도 알면 아마 고개를 숙일 겁니다.”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던 탈북 지인은 남아 있는 가족을 꼭 데려오겠다며 처연한 목소리로 ‘희망가’를 불렀다.

김동원 국제부 차장 davi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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