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찬일]북한인권법은 흥정 대상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
야당의 반대로 2005년부터 6년간 끌어온 북한인권법이 6월 국회에서 통과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북한 민생 인권법’이라는 변형된 주장을 들고 나와 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북한 주민의 민생 해결에 우선순위를 두어 식량 및 의료 지원 등을 통해 그들의 인권을 개선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물론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하면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 생존권은 한순간 조금은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인권법을 제정해야 하는 당위성은 단지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생계형 법안을 만들자는 것에 있지 않다. 북한 체제도 인권에 대해 깨닫고 그 토대 위에서 북한 주민들을 위한 정치를 펴는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라는 것이 그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에게는 생명줄이 되고 한반도에는 전쟁과 대결이 없는 평화와 통일을 가져다줄 제도적 입법 장치다. 우리 국회는 대한민국 헌법이 정한 의무를 다하여 우리의 영토이며 주권이 미치는 북한에도 인권이란 기본권이 실현되기를 바라는 뜻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돼 발효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쌀이나 퍼주고 의약품을 보내주는 법안이라면 그것은 인권이란 고상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북한주민복지법’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국회가 북한인권법을 외면한 것은 민주주의의 수치이며, 인류 최악의 폭압정권 아래 신음하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절규를 애써 회피하려는 비겁한 친북세력 또는 종북세력의 전형적인 작태가 아니라고 누가 변명할 수 있는가.

한나라당 역시 책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합의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핑계 삼아 상임위를 통과한 지 1년이 훨씬 넘은 북한인권법을 지금까지 차일피일 미루며 종북세력의 물 타기 수법을 수수방관하고 있다. 우리 2만여 탈북인은 누구보다 북한인권법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4월 26일 ‘북한자유주간’을 맞아 삭발까지 하면서 북한인권법 통과를 국회와 국민에게 간절히 호소하였다.

작금의 북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 북한 당국은 ‘정상회담 건’을 들고 나와 새로운 남남갈등을 유발해 보려는 검은 속셈을 노골화하고 있다. 이번 일로 미루어보면 북한인권법을 놓고 우리 사회가 갈등을 겪고 있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는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북한인권법 통과는 단지 2만여 탈북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인 7000만 민족의 호소이며 시대와 양심, 정의와 진리의 명령임을 국회는 명심하기 바란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북한 주민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며 우리 국회를 진정한 대한민국 국회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모처럼 우리 헌법이 자기 사명을 수행할 이 절호의 기회를 망각한 채 북한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대의민주주의의 본질을 오도하려는 민주당은 각성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저 멀리 유럽 나라들까지 채택한 북한인권법을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계속 외면한다면 자칫 한반도의 유일한 국가의 국회가 아니라 남한 반쪽만 대표하는 지회(支會)라는 비난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국민 모두는 포퓰리즘과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생존에 급급한 야합의 정치인이 아닌 민족과 역사 앞에 자기 사명과 책임을 다하는 그런 고상한 정치인만 정치무대에 남겨두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서울 여의도 의사당에서 활동하는 제18대 국회의원들은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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