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모래시계 검사들의 流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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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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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검사는 없다. 오직 슬롯머신 사건 수사 검사가 있을 뿐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모래시계 검사’란 말에 보인 반응이다. ‘모래시계’는 1995년 초 방영된 SBS의 인기 드라마이다. 박상원이 강우석 검사, 최민수가 조직폭력배 박태수, 고현정이 재벌 딸 윤혜린으로 나와 열연했다. 강우석 검사의 실제 모델이 1993년 슬롯머신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홍준표 의원이다. 김종학 SBS PD와 송지나 작가는 “검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를 만들겠다”며 홍 검사에게 조언을 부탁했고 홍 검사는 제작팀에 자신의 성장 과정과 수사 에피소드를 소개해줬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태풍이 몰아쳤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 등은 슬롯머신 업계의 대부 정덕일 씨와 그를 비호한 조직폭력배, 정치인, 검찰의 커넥션을 파헤쳤다. 6공(노태우 정부)의 황태자였던 박철언 전 의원, 엄삼탁 전 안기부 기획조정실장, L 전 대전고검장 등이 구속됐다. 이런 수사를 평검사들 몇몇이 해치웠다고 볼 수는 없고 검찰 고위층의 지원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서울지검 강력부에는 당시 조직폭력팀과 마약팀이 있었다. 홍 검사(사시 24회)는 같은 조직폭력팀의 김홍일 검사(사시 24회)와 함께 사건 수사를 주도했다. 정선태 검사(사시 23회)는 마약팀이었으나 조직폭력팀에 가세해 수사기록 정리를 도왔다. 이 세 사람은 요즘도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인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사시 30회)도 막내로 이 모임에 더러 끼었다. 그는 강력부 소속은 아니었지만 공인회계사 자격을 갖고 있어 계좌추적을 돕기 위해 수사팀에 가세했다.

▷홍 검사는 이후 수사로 얻은 명성을 살려 1996년 국회에 입성했다. 김 검사는 대검 중수부장 자리에 올랐다. 정 검사는 2006년 서울고검 검사로 밀려나 끝인가 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법제처장으로 임용됐다. 은 검사는 2004년 검찰을 나와 총선에 출마했다 낙선했으나 이명박 정부에서 감사위원이 됐다. 저축은행 비리로 모래시계 검사들의 인생 유전(流轉)이 시작됐다. 김 중수부장은 부산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은 전 감사위원을 구속했고 정 처장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거악(巨惡)과 싸웠던 검사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기가 민망하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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